
내가 좋아하는 VC인 First Round Capital에서 올해에도 스타트업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 정리는 다음 포스팅에…). 여기서 눈에 띈건 2년 연속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설문 결과였다. 인재를 발굴하는 것은 스타트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링크드인도 회사 운영 제1 원칙이 인재이고 (‘Talent is our number one priority’),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모든 회사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문제점이다. (일환으로 ‘실리콘밸리의 인재 유치 전쟁’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이 동네는 인재 발굴 및 유치를 위해 기상천외한 채용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지원자를 많이 받더라도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기준과 방법이 없다면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고, 또 그들을 나의 회사로 끌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아이비대학 컴싸 전공’ 같은 소위 ‘학벌’, 혹은 ‘어디 출신 엔지니어’ 식의 ‘스펙’을 바탕으로 ‘훌륭한 인재’를 가리고자 한다. 혹자는 이것을 인재를 재빨리 분별할 수 있는 ‘지름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탠포드 학부 나와서 맥킨지에서 3년, 하버드 MBA 후 구글 전략실에서 일했으면 다이아몬드 스펙 아니야?’), 개인적으로 이런 행위는 회사의 인재 관리 및 기업 문화에 매우 큰 위기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위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다른 회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기준들이 우리 회사와 해당 직무에 적합할 확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뭐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라고 생각 한다면 드릴 말씀이 없지만, 내가 운영하는 회사 /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좀 더 특별 하다고 생각 한다면 반드시 회사의 인재상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성공적인 인재 채용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인재상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하고, 그런 후엔 면접 등의 심사 과정을 통해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을 분별해 내고 채용 하는 것이 ‘정답’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훌륭한 사람이 불합격되는 한이 있더라고, 부적격한 사람이 합격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한다 (confusion matrix에 비유하자면 maximize precision, not recall). 특히 한 사람의 역할 비중이 더 높은 스타트업은 더더욱 그렇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채용자 입장에서 인터뷰를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전 회사에서 채용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갈 때 유입되는 인재들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면접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A/B 테스팅을 통해 (비록 표본수는 낮지만) 인터뷰 스타일을 교정하는 노력을 들였었는데, 이를 통해 정립한 훌륭한 인재 채용을 위한 면접관의 원칙을 나누어 본다:

1. 면접을 임하는 자세
면접관의 역할은 최고의 ‘짱짱맨’ 지원자를 찾아내는 것이지, 본인이 더 상급 지위의 사람 이라든지, 미래의 보스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권위의 자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면접관의 ‘똑똑함’을 보여주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가끔씩 면접 노트나 인터뷰 후 팀 회의를 하면 간혹 지원자를 탈락 시키려고 작정하고 면접을 진행한 사람들은 본다. 일부로 질문을 악의적으로 꼬아서 내고 대응도 잘 안해주고… 가뜩이나 긴장한 지원자들인데, 이런 경우 거의 대부분 자신의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원자의 평가를 충분히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면접이라는 ‘시스템’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답변을 잘 하게 되어, 되레 실제 실력이 떨어지는 지원자들을 합격시키는 안좋은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원자의 포텐을 최대한 평가할 수 있도록 최대한 편안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초반에 긴장을 풀 수 있는 가벼운 질문 등) 지원자가 질문에 ‘헤메는’ 경우에는 적당히 도와주는 것이 좋다.
2. 열린 질문 (open-ended question) 십분 활용
이력서는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다 좋아 보인다. 이력서에 업무 잘 못해서 프로젝트 말아 먹었다고 쓰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력서에 쓰인 과거 경력을 통해 연관 업무 경험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이에 열린 질문을 통해 지원자의 창의력, 논리적 사고 능력,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평가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느꼈다.
최근까지 자주 써먹었던 질문: ‘자율 주행차의 시대가 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약간 붕 뜬 질문처럼 느껴지지만 제품 전략과 산업 트렌드를 접근하는 사고 방식을 읽을 수 있고, 지원자의 답변에 따라 점점 질문을 구체화 시켜서 실시간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추가 질문들의 예: ‘당신이 우버 사장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그럼 그 시대에 가장 중요안 사안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고, 또 그 사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 하시겠어요? 현재 우버 서비스에서 바꿔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3. 예상을 벗어난, 살짝 허를 찌르는 질문 사용
직군마다 약간 다를 수 있는데 제품 담당자 (프로덕트 매니저) 면접은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인터뷰와 비슷하게 점점 정형화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아하는 제품이 무엇이에요? 왜요? 그 제품을 어떻게 개선 하시겠어요?’ 이란 질문은 제품 담당자 면접에서 단골로 던져지는 질문이다. 너무나 자주 사용(남용?)된 나머지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 구글 검색을 하면 잔뜩 나와버린다. 즉, 이 질문에 멋지게 대답하는 지원자를 만나면 면접 대비를 잘 한 사람일 뿐이지, 제품 담당자로써의 자질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 은행’류의 질문들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약간의 변형을 주면 의외로 지원자들의 ‘정직한’ 내공을 들여다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간혹 ‘가장 좋아하는 제품’ 질문 대신 최근 큰 기대를 하고 사용했는데 가장 실망했던 제품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 이유와 개선점을 알려달라고 질문한다. 혹은 제품 개선 방향에 대한 질문 대신, 좋아하는 무료 인터넷 제품/서비스를 골라 어떻게 유료화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본다. 제품 담당자 면접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이런 질문들을 던졌을 때 ‘product guy’와 그냥 ‘smart guy’의 차이가 생각보다 명확하게 들어난다.
4. 연관 부서의 피드백 참고
회사가 약간 큰 경우, 또 부서간의 협업이 많은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이런 cross-functional하게 구성되어 있다) 직군인 경우 연관 부서원들도 면접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협업하는 팀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재상 및 평가 항목이 직속 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관 부서원들이 면접에 참여함으로써 더 다양한 피드백과 관점을 받아 봄으로써 지원자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단,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연관 부서들의 피드백을 받아보고 존중해야하지만 궁극적인 평가 기준과 결정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도 링크드인에서 직속 팀원들을 채용할 때 반드시 제품 담당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그리고 운영팀(operations)을 패널에 포함시켰는데, 그들의 매우 훌륭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지원자를 불합격 시킨 적이 꽤 있었다.
5. 실력만큼 중요한 지원자와 회사의 코드 매치 (culture fit)
객관적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회사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 서로 코드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슈퍼스타들이 모여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것이 조직의 현실이다 (사족: 1998년 월드컵 때 네덜란드가 우승하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라 생각됨).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 리더십과 협업, 그리고 문제 접근 방법 스타일에 관련된 질문을 통하여 회사의 가치관과 문화에 얼마나 맞는 사람인지는 평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다음 주 까지 기한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동료가 상반된 접근 방법을 계속해서 주장해서 답보 상태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매우 중대한 사안이 있는데 상사가 휴가를 가서 연락이 되지 않아요. 오늘까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질서와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라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보고 라인을 신속하게 타고 올라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 등 ‘ask for forgiveness, not permission’ 문화가 강한 회사는 절차를 막론하고 문제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끝장을 보는 자세가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6. 스트레스 테스트 – 개인적으로 너무 비추
가끔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을 평가한답시고 지원자를 난감한 상황에 몰아놓는 경우가 있다 — 일명 ‘스트레스 테스트’. 개인적으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원자의 실제 실력을 가늠하는데 오히려 역효과였고, 또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완전 비추다. 감정만 상하면 다행, 자칫 잘못하면 비하성 발언 및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므로 제발제발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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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가 면접을 준비하는 것 만큼, 면접관도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선 그 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