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서 높으신 분들과 발표(executive presentation)가 잡힌 야심찬 당신은 눈에 불을 켜고 발표 자료(한국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로는 ‘PT’)를 열심히 준비한다. ‘청중을 사로잡는 멋진 발표’ 하면 딱 떠오르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 키노트를 벤치마크, 며칠 밤을 새우며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고화질 그래픽으로 장표를 만든다. 심지어 ‘one more thing’ 슬라이드를 첨가하는 센스까지.
하지만 Aㅏ… 안타깝지만 이미 당신의 PT는 볼 필요도 없이 망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발표의 대상이 현격하게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는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고 executive presentation은 회사 임직원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회의이다. 또한 이런 내부 회의는 의견을 주고 받고 이견을 조율하여 해당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자리이지, 한 사람이 혼자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제품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 임원들이 당신의 발표를 듣고 새로운 아이폰을 예약하듯이 줄을 서서 당신의 프로젝트 제안에 결재를 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신, 다음 세 가지를 신경 써서 임원 회의를 준비한다면 멋진 PT를 만들고, 성공적인 회의 결과를 끌어낼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 Content
첫 째, 모든 발표가 그렇지만 특히 임원 발표의 핵심은 내용이다. 회의 목적을 정했다면 (참고: 실리콘밸리 임원들이 회의 하는 법)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한 내용을 깔끔한 논리와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이 빈 종이에 나의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 해줄 논리를 한 줄 씩 적는 것이다.

이런 핵심 개요를 ‘executive summary’라고 하는데, 이 개요가 깔끔하고 명확할수록 발표의 내용이 튼실하다 할 수 있다. 좋은 척도로 만약 누가 1분 만에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거 한 장 읽어 보시면 됩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핵심 개요는 실제 장표 구성에 매우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PT 만드는 시간의 60 ~ 70%을 이 한 장의 핵심 개요를 쓰고, 다시 쓰고, 더 깔끔하게 보완하고 정돈하는데 할애한다.
2. Visual expression
발표할 내용이 잘 정리 되었다면 그 다음 작업은 내용들을 장표로 변환 시키는 것이다. 핵심 내용이 부실하면 그 어떠한 화려한 표현도 쓸모 없지만, 많은 공을 들여 좋은 내용을 준비 하였어도 표현력이 적절하지 않으면 그것 만큼 또 안타까운 것이 없다. 한마디로 내용 만큼 표현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내 첫 직장 매니저가 슬라이드 구성에 대해 해 준 조언이 있는데 ‘Your headlines should be eye catching like the National Inquirer, and your charts should be clear as the Wall Street Journal’ (의역: 장표의 헤드라인은 ‘디스패치’ 만큼 눈에 띄고 도표는 월스트리트저널 만큼 깔끔해야 돼). ㅎㄷㄷ.
장표의 가장 첫 작업인 헤드라인은 핵심 개요를 잘 적었다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핵심 개요에서 나열한 문장들을 각 장표의 헤드라인으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핵심 개요가 장표의 실제 ‘뼈대’가 되는 것). 그 다음은 헤드라인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핵심 데이터 및 논리적인 근거를 알맞는 도표 및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3차원 차트, 애니메이션, 그림자 넣기 등의 내용과 무관한 ‘효과’들은 제발 노노. 도표를 비롯한 장표의 다양한 표현 기법들은 핵심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 임원들에게 미술 작품이나 단편 애니메이션을 감상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나는 주로 세 가지 도표 서식을 ‘최애’하여 사용하는데, line chart, bar chart, simple table 이 그것이다. 추세를 나타내는 자료는 선으로 (line chart) 대부분 표현할 수 있고 양을 나타내는 자료는 막대로 (bar graph)로 잘 표현이 된다. 실제 숫자나 짧은 문장으로 비교 혹은 대조를 할 때는 단순한 표로 간단 명료하게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시각화 할 수 있다. 간혹 원 그래프(pie chart)도 사용하는데 비교급 및 추세 등을 표현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지양하는 편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출간한 ‘정보 그래픽 가이드‘ 책에서는 원 그래프를 시댁 식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 처럼 아주 뜸하게, 그리고 만약 사용하게 되면 아주 조심히 다루라고 조언한다. 😂
3. 연습
탄탄한 내용과 그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도표와 자료로 멋진 PT가 완성 되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계속해서 발표 내용을 점검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발표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청중이 누군지를 아는 것 (know your audience)’. 임원 회의에 참석하는 대다수는 내가 발표하는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 및 맥락을 알지 못하고, 혹시 알고 있더라도 구체적인 내용까진 모르고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어떻게 그들의 수준에 맞게 내용을 적절하게 ‘level-up’ 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습해야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회의를 끌어 나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긴 PT라도 럭비공 처럼 튀는 임원들의 폭풍 질문 및 반박 논거에 대비를 해 두어야 장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영어 표현이 여기에 매우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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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회의 PT 들어가서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 하다가 회의실 갑분싸 만들지 말고 위의 세 가지를 통달하여 멋진 회의 함 가즈아.
Photo credit: Ben Stanfield,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