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이 미국 고급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를 15조 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소식에 미국의 미디어는 물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테크 애널리스트로 빙의, 아마존의 전략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가 의미하는 것’이란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매우 신기한 며칠이었다. 아마존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현상이었다. 워낙 큰 뉴스라, 나도 시류에 편승하여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 소식을 들으며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 본다.
1. 테크 회사의 반격
최근 테크 관련 인수합병 트렌드는, 특히 다른 산업 사이의 인수합병은, 기술적인 역량을 키우고 싶은 기존 산업들이 주도하였다. 유니레버의 달러쉐이브클럽, 쥐엠의 크루즈 인수, (공교롭게도 아마존과 같은 날 발표해서 빛이 바랬지만) 월마트의 보노보스 인수 등이 모두 기존 산업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고 싶어 최근 트렌드 및 기술적인 역량을 ‘강제 이식’ 한 것이다 (= They need to stay relevant).
2. 아마존이 모든 사람들이 가장 자주 찾는 ‘시장’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추를 끼움
아마존은 이미, 최소한 북미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시장(marketplace)이다. $280B로 추정되는 아마존의 GMV (아마존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는 미국 전자상거래 거래액의 40%에 육박하며, 4천 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월마트 GMV의 60%에 달한다. 이런 괴물 같은 아마존도 그들이 표방하는 ‘Everything Store’를 달성하는데 크게 발목 잡히는 것이 있었는이 이것이 바로 식료품 (grocery) 이었다. ‘뭐 식료품 별거 아닌데 그런거 말고 TV나 더 많이 파는게 나은거 아니야?’ 라고 식료품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큰 오산.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들을 평균 수입의 10%를 음식에 지출 하고, 그 중 절반 이상을 식료품이 차지한다고 한다 (food-at-home). 이는 아마존이 현재 ‘꽉 잡고 있는’ 의류 와 기타 지출 apparel, services, and other expenditures)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물론 Amazon Fresh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식료품 사업에 도전해 봤지만 홀푸드의 광대한 매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 시장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3. 홀푸드 = 아마존 혁신의 전초기지
사실 이 뉴스가 ‘product guy’로써 제일 흥분되는 것은 아마존이 홀푸드를 인수함으로써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혁신, 그리고 기존의 아마존 서비스들의 융합과 재탄생에 대해 상상을 하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뒷단’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아 정말 이 인수 무섭게 정교하고 대단하네’라고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상해 본 아이디어 몇 가지:
홀푸드 = 미니 아마존 웨어하우스
Amazon Prime Now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필품을 두 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서비스이다. 홀푸드가 아마존의 마지막 단에 있는 물류센터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대도시, 생필품, 그리고 두 시간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정확한 수요 예측에 의하여 홀푸드 창고에 더 다양한 제품들을 구비해 두고 즉각 판매 및 배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볼 시작 한 시간 전에 TV가 고장이 났는데, 클릭 몇 번 으로 곧바로 새로운 TV가 집 앞에 배달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이미 저렴한 가격과 무한대에 가까운 품목을 구비하고 있는 아마존이 ‘즉석 배달’이라는 궁극적인 편의를 실현한다면 그야말로 게.임.끝. 일 것 같다.
배달 드론들의 기지
아마존이 드론을 이용하여 상품들을 배달한다고 했을 때 감탄사와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들이 머리속에 곧바로 떠올랐었다. 특히 국지적인 비행 거리가 이 멋진 아이디어를 실현 시키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홀푸드 옥상을 ‘드론 기지’로 바꾼다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홀푸드 창고를 미니 아마존 물류 센터로 사용한다면 드론 배달이 현실로 확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장보기 + 생필품 + 좋아하는 책을 아마존 에코의 알렉사를 통해 음성으로 주문하면 10분 후 드론이 뒷 마당에 주문한 상품들을 배달시켜 놓고 유유히 다음 장소로 날아가는 상황이 SF 영화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끼친다.
오프라인 쇼핑 경험의 혁신
아마존은 현재 Amazon Go라는 매장을 직원들을 상대로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아마존 앱을 통해 매장에 들어가서 필요한 상품을 고르고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그냥 걸어 나가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마법의 슈퍼마켓’이다. 시범 매장을 통해 기술을 완성시킨 후 아마존이 자신들만의 Amazon Go 매장들을 만들다면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존의 실행력이 워낙 무서워서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동시에 매우 높다고도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성공적인 소매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멋진 기술’과 실행력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상품들을 구비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소매의 제 1, 2, 3의 법칙인 location, location, location을 놓쳐서는 안된다. 만약 Amazon Go 기술이 홀푸드에 바로 적용이 된다면? 품질 높은 상품과 부자 동네의 노른자 땅에 위치한 홀푸드는 Amazon Go 기술을 적용해 오프라인 쇼핑 경험의 혁신을 선도하기에 너무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혼수로 집, 가구, 차, 통장 다 준비해 놓고 ‘칫솔만 들고 들어와~’라고 하는 느낌?). 이미 현재 오프라인 경험이 최고에 가까운 홀푸드에 온라인 및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우리에게 선보일 마법스러운 쇼핑 경험은 너무 기대가 된다.
SaaS (식료품-as-a-service)
아마존의 AWS 서비스는 전 세계 크고 작은 개발자에게 차별하지 않고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식료품을 소비자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으로 홀푸드를 생각하면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지금은 소비자가 장을 보러 가는 곳이지만, 음식점들도 홀푸드 유통 허브에서 직접 원자재 / 반자재들을 배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홀푸드엔 꽤나 괜찮은 푸드코트가 있는데, 매장에 들리는 사람들의 간식거리로 파는 것이 아닌 기업용 케터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식료품의 SaaS시대… 아마존이 연다고 확신한다.
결론: 아마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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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홀푸드 인수 발표 당일 아침엔 슬랙을 $9B에 구매 의향을 보인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더더욱 ㅈㄴ 멋지다.
PS2 – 커버 이미지 소스 https://goo.gl/Nd9P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