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얼간이

나는 미국 프로팀 스포츠를 꽤 열심히 보는 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의 표현인지, 세계 정상의 스타 플레이어들의 묘기에 가까운 실력을 보면 입이 절로 벌어지고 박수가 절로 나온다. 프로 팀들은 매년 이런 멋진 스타들을 다른 팀에서 영입하거나 드래프트를 통해 스타 유망주들을 뽑는데 혈안을 기울인다. 그런데 가끔식 경기를 보다 보면 이런 스타들이 개인 기록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슈퍼스타 코스프레에 심취하여 팀의 승리를 망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트리플 더블 기록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골밑 깊숙히 들어와서 수비를 하다가 속공에 당하거나, 수비수를 따돌린 선수에게 패스를 하지 않아 득점 기회를 놓치는 등, 누가 봐도 개인 기록에 집착한 문제의 선수는 결국 가장 큰 패인이 되고 경기 후 욕을 한 바가지로 먹는다. 농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포수 싸인이나 코치의 권고를 무시하는 야구 선수, 리그 득점왕에 집착하여 스루패스를 하지 않고 드리블 하다가 막히는 축구 선수 등 여러 팀 스포츠에서 우리는 이런 ‘혼자 잘난’ 스타 선수들을 만난다. 아무리 재능있는 스타라도 제 몫만 챙기고 승리에 기여하지 않는 이런 선수들을 팀에서 좋아할 리가 없다.

회사에서도 가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스펙 좋은 ‘스타급’ 인재를 팀으로 영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본인 잘난 맛에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 까지 참견을 하고 팀원들의 아이디어는 형편 없다고 묵살하며 본인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우기면서 프로젝트의 업적과 상부의 관심을 본인 위주로 가져가려고 한다. 똑똑한 친구이기에 평균 이상의 확률로 맞는 말을 하다보니 팀원들도 대놓고 반발하기도 뭐해서 꾹 참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행여 프로젝트가 잘 안되면 본인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 하였으나 모자란 팀원들 때문에 실패를 했다고 투덜거린다.

미국에서 이런 사람들을 ‘똑똑한 얼간이’ (brilliant jerk) 이라고 부른다. 혼자만 잘나고 남들에겐 도움은 커녕 기분만 나쁘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재수 없는 놈’ 이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이런 ‘똑똑한 얼간이’는 암적인 존재다. 아무리 제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본인의 업적만 부각시키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원만하게 협업하고 조직을 한 방향으로 끌어나가지 못하는 직원은 회사의 성장과 프로젝트의 원만한 진행을 방해하는 커다란 짐이다. 

그런데 누가 처음부터 본인이 ‘똑똑한 얼간이’가 되고 싶어하겠는가? 또, 다른 사람이 본인을 그렇게 지명 했다고 한들 자신을 ‘똑똑한 얼간이’라고 인정할 사람이 몇 명이 되겠는가? ‘똑똑한 얼간이’는 일부러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운 좋게 찾아온 연속적인 성공에 취해 마음이 자만심으로 차다보니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몇 명 만난 적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지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at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으로 몇 번 성공한 것을 훈장삼아 자만심과 근자감에 쌓여 있던 사람들이었다.

만약 ‘내가 해봐서 아는데~’, ‘네 생각은 완전 틀렸어~’, ‘[어디어디] 부서 다 필요 없고,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돼. 저번에도 이렇게 해서 잘 되는거 너도 봤잖아’ 등의 발언들을 자주 한다면 본인이 혹시 ‘똑똑한 얼간이’가 되지 않았나 의심해 봐야한다. (특히 누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자가진단이 필수). 자신도 모르게 ‘똑똑한 얼간이’가 되는걸 피하기 위해 평소에 남의 피드백을 경청하고,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리며, 팀원들과 협업 상황에서 분위기 및 행간을 파악을 하는 감성지수에 신경을 써야한다. 

스포츠팀이나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은 똑같다: 우승에 기여를 하는 자.

우승에 기여하지 않는 ‘똑똑한 얼간이’ 스타는 필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