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브랜드의 도굴꾼

예전 링크드인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신제품 관련 업무를 많이 하다보니 업무의 많은 부분이 새로운 제품 컨셉에 대한 사용자 반응 조사, 그리고 시장 분석에 따른 새로운 기능들을 제품에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일이었다. 애자일한 자세로 사용자의 반응을 열심히 제품에 반영하기를 반복하며 신제품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체적인 제품을 검토해보니 초반에 기획했던 특정한 사용자 집단을 위한 단순하고 빠른 업무 효율 제품이 아닌 회사 전체 조직을 대상으로 한 복잡한 데이터 포털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팀 내 전략을 담당했던 직원이 한 마디를 한다. ‘우리는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을 위한 제품을 만든 것 같아. (We built for gravediggers in Cleveland’).’ 링크드인은 전문가 기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기에 어떠한 특정 직종의 사용자들의 업무/커리어와 관련하여 어떻게 성공을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제품 개발을 한다. 대도시의 리크루터, 인사담당자, 영업사원, 마케터, 구직자 등이 주 대상인데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이라니… 한마디로 쓸데 없는 사용자 집단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었던 것이다. 

열정이 있는 제품 담당자라면 자신의 제품이 완벽하기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완벽에 최대한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극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여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열정이 과해 주 사용자가 아닌 집단(=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의 니즈마저 완벽하게 반영하려고 하여 전체적인 제품이 너무 복잡해지고 사용성이 되레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해당 제품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상적인 제품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말 그대로 과유불급.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선 내 제품의 잠재 고객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이에 따른 냉혹한 선택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페르소나 기법을 통해 사용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했더라도 페르소나가 너무 많거나, 페르소나의 니즈들이 상충하는 경우는 제품이 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 이탈리아 밀라노 고급 패션쇼 느낌이 나는 옷을 구매하고 싶은 페르소나와 건설 현장에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옷을 원하는 페르소나를 모두 만족시키는 옷가게를 만드려고 해봐라).

애자일, 페르소나, 사용자 중심 디자인 등 멋진 제품 개발 기법을 다 동원 하였음에도 최종 제품이 찜찜하다면 잠시 돌아서서 생각해보라… 우리는 혹시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을 위한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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