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하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시설과 복지에 감탄하여 든 생각: ‘아 역시 이렇게 직원들에게 물심양면으로 확실하게 지원을 해 주니 멋진 제품이 나올 수 밖에!’ 혹자는 이와 같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풍요로움이 혁신을 장려하는 큰 힘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최근 업무 관련으로 외부 연사 초청 세미나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이는 나의 ‘풍요 (abundance)’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세미나 연사는 ‘A Beautiful Constraint’의 공동 저자인 Mark Barden. 그의 요지는 제약에서 오는 압박과 절박함이 조직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끌어 내는데 매우 중요하며, 이는 스타트업 및 신흥 브랜드들이 기존 업체들을 이기기 위한 필수 역량이라는 것이다.
이 예로 그는 남아공의 Kulula Air 저가 항공사의 사업 진출 이야기를 들었다. Kulula Air는 비행기를 한번도 타보지 못한 남아공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업계 후발 주자였다. 소자본 회사인 Kulula Air는 모든 돈을 여객기 확보에 사용하였고, 이에 고객 유치에 필요한 자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보잉 737 한 대 가격이 5천만불!) 이런 제약에 부딪친 Kulula Air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낸다 – ‘우리 비행기를 광고판으로 사용하자!’ 이에 비행 초보자들을 겨냥한 컨셉에 맞게 비행기 전체를 ‘사용 설명서’ 느낌으로 도색을 하였다.
Kulula Air는 이런 도발적인 행동을 통해 TV나 지면 광고 없이 사람들을 ‘수근거리게 하는’ word-of-mouth 효과를 유발, 비행을 처음 접하는 잠재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에 마케팅 예산이 넉넉히 있었다면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품을 개발할 때도 이런 제약들이 더 혁신적이고 좋은 사용자 경험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구글의 ‘카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요새 잘 나가고 있는 NBA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팀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이 제공되는데, 이런 검색 결과 맨 위에 다음과 같이 ‘한 장의 카드’에 가장 핵심적인 정보가 요약되어 보여진다. ‘카드’라는 웹페이지의 공간적 제약을 통해 수많은 정보 중 사용자에게 그때 가장 중요하고 관련있는 정보만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위터의 140자 제한도 (비록 조만간 풀린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140자의 제약된 글자수가 충분한 표현을 제한하기보다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더 간결하고 힘차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시조에서 운율의 제한으로 글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 것 처럼.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제약들은 외부의 불가항력적 힘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제품을 개발하면서 자체적으로 정의한 인위적인 제약이라는 것이다. 일부로 자신들의 입장을 조금 더 ‘불편하고 부족하게’ 만듬으로써 핵심 사용자 경험을 확실하게 정의하는 계기를 가지고, 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더 창조적이고 out-of-the-box 사고 방식을 유도하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단 여섯 단어로 감동적인 소설을 만들어 보라는 친구의 내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m.
판매함: 아기 신발, 한번도 신지 못한.
제약… 갈 길 바쁜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방해물이 아니라 더 멋진 결과물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속박인 것이다.

참고] 실제로 헤밍웨이가 위 이야기를 지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