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가격 전략

경영학부를 나왔거나 MBA 과정 중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면 product, promotion, placement, 그리고 pricing으로 이루어져있는 ‘4P’s of marketing’이라는 개념이 생각날 것이다.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 및 수행을 위해 고려해야 할 네 가지 요소들이다. 물론, 이 네 요소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기에 모든 요소들이 고루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격(pricing)의 역할은 감히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제품의 가격 전략이 회사의 매출과 직결되며, 또 가격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많은 우여곡절 끝에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였는데 잘못된 가격 정책으로 사업에 실패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주변 스타트업들을 보면서, 그리고 창업자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자주 듣는 신제품 가격 정책은 다음과 같다:

OOTA (Out-of-thin-air; 그냥 마음대로 정함)

$9.99, $49.99 이런식으로 별 생각 없이 ‘익숙한 가격표’를 가져다가 붙인다. 가격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여유도 없으며, 단순히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자 ‘부담 없어 보이는’ 가격으로 최대한 사용자를 많이 확보하자는 의도이다. 저렴한 가격, 사용자 확보… 다 좋은데… 문제는 이렇게 생각없이 가격을 정했다가 영원히 흑자를 보지 못할지도… 😭

Cost-basis pricing (원가 기반의 가격 책정)

하드웨어 업체에서 가끔 보이는 가격 전략인데 원가에 마진을 얹혀 최종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원가 $40불 + $10의 마진을 더하여 $50불이라는 가격을 정하는 것이다. 단위 경제도 맞아 떨어지고 나쁘지 않은 전략인 듯 하지만 스타트업이 적용하기에 용이하지 못한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제품 주기 초반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기에 높은 원가가 고객들의 ‘지불 의향’ (willingness-to-pay)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제품인 경우에는 원가를 계산하는 방법이 하드웨어처럼 간단하지 않아 가격 책정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질 수 있다.

Benchmark competition (경쟁사들 가격 참고)

가장 현실적이고 매우 괜찮은 방법이다. 선두 업체들이 제품군의 가격대를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제품과 기능 및 포지셔닝을 비교하여 프리미엄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저가형으로 나갈 것인지 정하면 된다. 나 역시 회사에서 영업용 솔류션 제품을 출시했을 때 이쪽 분야 리더인 Salesforce의 가격을 벤치마킹을 많이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이런 벤치마킹 기법이 적절한 비교의 잣대가 되지 못한다. 제품의 기능이나 비교의 축이 현저하게 다른 경우엔 벤치마크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글 글래스는 기존 안경 가격과 벤치마킹을 해야할까? 아니면 스마트폰? 태블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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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위와 같은 상황들… 나 역시 많이 경험하였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가격 전략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을 적용해 보면서, 또 이쪽 분야의 전문가들과 업무를 같이 하면서 다음과 같은 계량적인 접근 방법에 이르게 되었다. 가격 전략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나의 방법이 회사에서 교과서처럼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제품의 가격 전략을 정립하고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기에 가격 전략으로 고민하는 스타트업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사업 전략과 상통하는 가격 전략을 정립한다. 좋은 가격 전략(pricing strategy)은 더 상위에 있는 사업 전략(business strategy)을 지지할 수 있어야한다. 제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장 점유율? 이윤 극대화? 매출 증가? 해당 목표에 따라 가격 전략과 포지셔닝을 다르게 해야한다.

  • 시장 점유율 극대화 (market penetration):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경우 가치 대비 가격이 동등하거나 조금 더 낮아야 한다. 즉, 가격 때문에 고객들이 ‘태클’거는 일이 거의 없어야 한다.
  • 매출 극대화 (revenue maximization): 고객군 사이에 지불 의향이 동일하여 제품의 차별화가 필요 없는 경우 범용적인 제품으로 최대한의 고객에게 최대한의 가격으로 제품을 팔기 위해 노력한다.
  • 이윤 극대화 (profit skimming): 고객군 마다 제품을 차별화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챙긴다. 예를 들어 BMW M3 모델로 최고 스펙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프리미엄을 받아내고 318i 모델로 ‘매스티지’ 제품을 원하는 대중들에게 프리미엄을 받아내어 세분화된 고객군마다 최대로 이윤을 남기는 전략이다.

가격 전략이 정립되었으면 소비자들의 ‘지불 의향’ (willingness-to-pay)을 고려하여 제품에 알맞는 가격을 정해야 한다. 가격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Step 1: 소비자 니즈 파악

제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기능들을 나열한 후 잠재 사용자들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품을 구성해보라고 한다. 이 기능은 넣고, 저 기능은 빼고…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면 대중적인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개발팀들의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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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들로 제품을 구성해 보세요.

Step 2: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 측정

이상적인 제품을 구성하였다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이 구성한 이 제품에 대해, 다음의 질문에 알맞는 금액을 써주세요:

  • $____: 이 가격에 제품이 판매된다면 나는 반드시 구매할 것이다.
  • $____: 이 가격에 제품이 판매된다면 약간 고민이 되겠지만 구매를 고려해 보겠다.
  • $____: 이 가격에 제품이 판매된다면 너무 비싸서 절대로 구매를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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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취합하면 ‘적당한’ 수요곡선을 만들 수 있다. (위 질문들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으면 Van Westendorp’s Price Sensitivity Mete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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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소비자의 각 기능에 대한 선호도 측정

MaxDiff라는 설문 기법을 이용하여 잠재 사용자들이 고른 기능들의 우선 순위를 매긴다. 이 우선 순위를 이용하여 각 기능별 가치를 계산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하여 최종 제품 구성 및 가격대를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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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MaxDiff 설문을 통하여 각 기능들을 선호도순으로 나열할 수 있다.

이렇게 도출된 가격이 맨 처음 정의한 사업 전략 및 가격 전략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 이에 맞추어 적당히 조절(calibrate)하여 최종 가격을 도출하면 끝!

그리고 그 선호도와 수요곡선을 이용하여 각 기능별로 가치를 매길 수 있다.
기능별 선호도와 수요곡선을 이용하여 각 기능별로 가치를 매길 수 있고, 이를 더하여 제품의 최종 가격을 도출할 수 있다.

약간 복잡해 보일수도 있는 과정이지만 가격에 대한 소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에, 조금 머리 아프더라도 꾹 참고 시도해 보길 권장한다. .

가격 전략은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끝이 없다. 복잡하려면 끝이 없고 단순하려면 그냥 생각 안 하면 된다. 어느 정도로 양파를 까던, 단번에 완벽한 가격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가격을 정하면 이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고, 단위당 이익을 최대화 하려고 하면 충분한 고객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계량적인 방법들을 통해 고객의 성향을 빨리 파악하고 가격 및 나머지 4p들을 잘 조율한다면 성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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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https://goo.gl/XSE5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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