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와트니 법칙

이미지: 영화 ‘마션’ http://goo.gl/zF3HEi

지난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실리콘밸리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 그 증거로 잘 나가던 스타트업의 감원 및 폐업 소식, 낮아지는 기업 가치, 그리고 상장된 IT 회사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주식 가격 폭락 등이 제시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분명히 작년보다 더 차가운 공기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리크루터들에게 연락도 예전보다 덜 오고 주변에도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동참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 그리고 실리콘밸리 전반에 걸쳐 회자되는 신조어가 ‘와트니 법칙 (The Watney Ru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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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 마션에 나오는 와트니 대원처럼 행동해야 한다. 우리를 구해 줄 감자 수송선이 오리라는 가정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즉,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투자를 통해 ‘구원 받음’을 기대하지 말고, 와트니 대원처럼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와트니 법칙은 First Round Capital의 Josh Kopelman의 트위터 언급으로 시작하여 First Round Capital의 Limited Partner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공개 되면서 실리콘밸리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Big Basin Capital의 윤필구 대표님도 이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이 법칙에 따라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혹독한 ‘군살 빼기’에 돌입하고 있는데, 회사들의 와트니 다이어트 전략에 대한 지도 원리(guiding principle)를 생각해 보았다.

핵심에 대한 정의와 집중

지난 블로그 글 ‘링크드인 창업자, 그리고 CEO랑 회의하기’에서 언급한 것 처럼 어려운 상황일수록 회사의 핵심을 정확히 정의하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력, 자본, 그리고 시간이다. 이것들이 제약을 받기 시작할 때 위험을 ‘헷징’하기 위해 자원을 두루두루 분산하는 전략을 취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예: 야후의 몰락). 자신들의 핵심 역량과 사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를 하고, 인정사정 없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 영역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도 항상 우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우선적인 투자 및 관리에 집중을 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똑똑한 성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 (growth)였다. YC의 Paul Graham도 빨리 성장하는 능력이 스타트업를 정의한다고 하였고, 실제 YC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product-market fit 보다 growth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와서 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닥치고 성장’보단 ‘똑똑한 성장’, 즉 성장에 질에 신경을 써야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를 위해 회사들은 gross profit, gross margin을 향상시키는 것에 노력을 들여야 한다. Tomasz Tunguz의 블로그에 언급된 예제를 통해 성장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매출이 100억인 두 회사가 있는데 첫 번째 회사는 gross margin이 5%, 두 번째 회사는 95%라고 가정했을 때 두 번째 회사는 같은 매출의 첫 번째 회사보다 신제품 개발 및 영업/마케팅에 19배나 달하는 금액을 재투자하여 성장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즉, gross margin이 높을수록 성장에 더 많은 금액을 재투자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부의 투자를 줄이면서 자생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

영화 마션에 와 닿는 대사가 있다:

“… 문제를 하나 풀고, 그 다음 닥치는 문제를 풀고, 계속해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해요. 그리고 충분히 많은 문제를 풀게 되면 집으로 귀환할 수 있는 것이죠.”

회사는, 특히 스타트업은, 문제 풀이의 연속이다. 단지 호황기에는 그런 문제들을 당장 풀지 않아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황기가 닥치면 문제들을 풀어나가지 못하는 회사들은 ‘화성에 고립되어 죽게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얼어붙은 투자자들의 관심에 좌절하지 말고 (그럼 죽는다), 어떻해서든 앞에 닥친 상황들을 타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회사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지난 블로그 글 아름다운 제약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인력, 자본, 그리고 시간의 제약들이 더 혁신적인 문제 풀이법을 고안해 내는 촉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실리콘밸리에 정말로 겨울이 오는지, 단지 꽃샘 추위로 지나갈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어떠한 상황이 도래하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내실에 충실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계발한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웃으며 위기를 탈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