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정부의 역할

작년 말, 5년 정도 탔던 나의 애마를 떠나 보내고 닛산 리프라는 전기차로 갈아탔다. 총 배터리 용량 24kW인 리프는 최적의 조건에서 주행 거리가 80마일 (125km 정도) 밖에 안되는 경차이다. 인라인 6기통 엔진의 중형 세단을 폼나게 몰았었기에, 왠지 인생이 다운그레이드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코딱지 만한 전기 경차 타려 실리콘밸리에 왔나 자괴감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로 갈아탄 이유는 너무나 명확한 경제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마 닛산 리프 (및 동급 전기차)
가격
  • 자동차 리스 비용: 없음 (현금으로 다 구입)
  • 휘발유: ~$150/월
  • 리스 비용: $95/월
  • 충전 비용: 무료 (회사에서 무료 충전, 집 근처 무료 충전소 이용)
혜택
  • 간지남-_-
  • 연방 정부 혜택: $7,500 리베이트 (리스 비용 낮추는데 사용)
  • 주 정부 (캘리포니아) 혜택: $2,500 리베이트 + 카풀선 사용 허가증 발부
  • PG&E (한전 같은 곳) 혜택: $500 리베이트
  • 회사: 전기차 전용 발렛 서비스 (주차 및 충전 해줌)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연방 정부, 주 정부, 그리고 PG&E에서 전기차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혜택들. 이런 혜택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혁신적이지만 미완의 기술인 전기차를 손쉽게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것은 혁신을 촉진하는데 정말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어진 시간 안에 충분한 수요가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정부의 ‘보이는 손’이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이런 시장 형성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혜택을 입고 시장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 공급자들이 하나 둘 씩 더 늘어나게 되고, 이는 경쟁을 유발하여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더 좋게, 더 빠르게, 더 싸게)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며, 더 좋은 제품은 미약했던 시장을 더 크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여태까지 한국에서는 이러한 신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 공급자(= 스타트업)를 지원하는 정책을 주로 펴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료들이 국민들의 세금을 너무 위험한 분야에 직접 베팅하지 말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들을 완화하여 스타트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오히려 더 나아가, 정부가 혁신적인 신제품 및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도록 시장 형성을 도와주는 것이 어떨까 라고 주장하고 싶다. (신제품 발굴 및 스타트업 육성은 VC가 관료들 보다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앞으로 대박이 날 것 같은 산업의 ‘마켓 메이커’의 역할을 정부가 해준다면 혁신의 속도가 배가되지 않을까.

그래도 테슬라로 갈껄 그랬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