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담당자와 개발자: 냉정과 열정 사이

테크 회사의 제품 담당자라면 개발자와 한 번 쯤은 싸워봤을 것이다. 다음은 제품 담당자와 개발자가 싸우게 되는 전형적인 상황.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면서 제품 담당자는 기존에 있는 기능들과 코드를 조금 변형하고 이래저래 짜깁기 해서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면 당장 내일도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하고, 엔지니어는 그런 멍청한 방법은 제대로된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며 새로운 infrastructure를 만들고 새로운 코드들을 짜야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기존에 있던 코드를 계속해서 변경하고 여기 저기에 덕지덕지 붙여 제품을 구현하다 보면 코드가 프랑켄슈타인처럼 되어 관리와 디버깅이 매우 까다로워지며, 또한 추후 확장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개발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술 부채가 (technical debt)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새로운 판에서 완벽한 코드만 짜려고 하다간 크리스마스에 맞춰 내야 하는 제품이 초복이 넘어 출시되는 위험이 생긴다. ‘네가 맞다. 너도 맞다’의 황희 정승 코스프레 늪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할 때 제품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개발자를 설득한다: ‘완벽함은 좋음의 가장 큰 적이야. 일단 내가 제안한 대로 하면 어느 정도 좋게 구현이 되니깐, 일단 빨리 만들어서 우리 가설을 증명한 후에 제대로 만들자.’ 

겨우 설득해서 진도를 뺀 제품 담당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개발자는 이 결정에 대해서 탐탁해 하지 않는다. 제품 담당자는 본인이 극적인 타협을 끌어내어 시간 내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자신을 고마워 하지는 못할 망정 왜 탐탁해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발자의 입장이 되어보자. 물론 좋은 제품과 기능들을 사용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제품 담당자 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 출시에 대한 개발자들의 평가는 해당 제품을 구현하는데 존재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멋지고 깔끔하게 풀었는지가 큰 요소가 되고, 이러한 engineering craftmanship을 코드로 표현하고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특히 큰 테크 회사인 경우 해당 업무의 특수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일반적인 잣대로 업무 성과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의 실력을 대변하는 코드가 다른 개발자가 봤을 때 깨끗하고 좋아야 한다. 엘레강스한 코드를 짜고 멋진 시스템 아키텍쳐를 구현할 수 있는데, 제품 담당자의 ‘빨리빨리’ 압박으로 프랑켄슈타인 코드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검사를 맡아야 하는 개발자의 마음이 좋을리 없다. 심지어 성과 평가에 반영이 안된다고 한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업무인 개발자의 (= developer) 입맛에 맞을리 없다. 한두 번은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그것이 반복되는 일상이 된다면 아마 개발자들은 그 제품 담당자를 떠나버릴 것이다.

다시 제품 담당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자. 개발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조건 완벽 코드 모드로 가서 망부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 개발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해당 개발자의 업무를 인정해 주고 그것이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 강조를 하여 그의 사기를 북돋아 주거나, 성과 평가 때 코드 및 기술 문서와 더불어 본인의 기여도를 보여줄 수 있도록 임원 보고서에 개발자를 참조, 혹은 기술적으로 새롭게 접근하기로 결정된 프로젝트로 해당 개발자를 추천하는 배려 등이 노련한 제품 담당자들이 개발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나도 예전 링크드인 온라인 사업부를 담당했을 때 기존 사용자 경험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성과를 최적화 시키는 그로스 해킹팀에 배정된 개발자들은 두 스프린트 단위로 프로젝트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였고, 기능을 전체 팀 앞에서 시연하는 ‘데모 데이’에서 지난 성과를 나누고 기여한 개발자들을 축하해 주었으며, 가끔씩 사장님 / 부사장님을 초대해 해당 업무의 중요성을 팀원들이 느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던 경험이 있다. (사족: 꼬아서 보는 사람들은 임원들이 팀을 방문하는 행위가 오히려 더 부담되고 ‘쫀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리콘밸리에서는 팀에게 사기를 진전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이다. (‘와~ 내가 하는 일이 사장님이 신경 쓸 정도로 회사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구나!’))

흔히 제품 관리는 50% 과학, 50% 예술이라고 한다. 성공적인 제품에 필요한 기획, 사용자에 대한 인사이트,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 프로젝트 관리 기법 등은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치중된 제품 담당자의 필수 실력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이 핵심 내부 이해관계자인 개발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과 조율을 아름답게 끌어내는 실력은 분명 제품 관리의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총 가동해야 하는 이런 제품 담당자의 길… 단연코 쉽지 않지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하고,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위대한 제품의 특성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괜찮은 수 많은 제품 중에서 진정 위대한 제품을 판별할 수 있는 특성이 무엇일까요?’ 

내가 회사에 제품 담당자 인터뷰를 50번 이상 하면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지원자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예전 링크드인 다닐 때 제프 위너 사장님의 블로그 글을 계기로 ‘제품 담당자라면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서 묻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품 담당자 면접 질문으로 너무나 적절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제품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있으면 비교적 쉽게 대답할 수 있고 (반면 제품에 대해 평소의 생각이 깊지 않았다면 ‘붕 뜬’ 느낌의 질문에 당황하기 십상), 또 제품 담당자로써 제품에 대한 철학 및 접근 방법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답은 없지만 좋고 나쁜 답변을 판별하기 쉬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남에게 설득력 있게 답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제품 몇 개를 접하면서 평소 가지고 있던 두리뭉실한 답변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제하여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위대한 제품의 필요 조건으로 기본적인 기능들을 사용자들에게 문제 없이 제공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우리는 화려하고 멋진 새로운 기능만 추구하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혁신’ 제품들을 너무나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여러 신용카드 정보를 하나의 전자식 신용카드에 넣어주는 ‘Coin’이라는 제품이 있었다 (예전 블로그 포스트 참고). 뚱뚱한 남자의 지갑은 멋대가리가 없기에 실리콘밸리의 미니멀리스트 성향의 테크쟁이들은 너도나도 이 ‘위대한’ 제품을 선주문 하였는데, 막상 제품이 배달되어 사용해 보니 15% 정도의 결제 실패율이 나는 것이었다. 신용카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결제의 신뢰도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그 아무리 멋진 혁신 기능이 들어갔다 해도 이 제품은 위대하긴 커녕 그냥 망작인 것이다. 영어로 이런 상황을 ‘failed on basic execution’이라고 하는데, 이 기본적인 것들을 완벽하고 문제 없이 실행하는 것이 위대한 제품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된다.

기본 조건이 충족 된 상태에서, 위대한 제품의 특성 중 하나는 제품의 성능이 사용자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는다는 것이다 (‘performance exceeds the user’s expectations by a mile’). 보통 우리는 어느 문제나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사용하는데, 이 때 대개 어느 정도의 문제와 니즈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기 나름이다. 진공 청소기를 사용했을 때 카펫이 깨끗해지는 정도, 혹은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속할 때 느껴지는 승차감 정도 등 수 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예상하는 기대치가 있는 것이다. 위대한 제품은 이런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할 정도의 멋진 제품 성능을 보여준다. 다이슨 청소기로 처음 카펫을 밀었을 때 느끼는 흡입력 및 불과 몇 십 초 만에 수북히 빨린 먼지들을 본 사람들은 예상치를 뛰어 넘은 ‘고성능’이 무엇인지 몸소 느껴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테슬라 자동차의 랙 (lag) 없는 가속도와 승차감은 사용자의 기대치를 훨씬 능가하여 고객들을 만족 시킨다.

셋 째,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음과 동시에 사용자가 기대하지 않은 부분까지 배려하여 즐거운 사용자 경험을 전달한다 (‘surprise and delight’). 페이스북 메신저가 ‘따봉’ 이모티콘을 찾지 않고 한번에 보낼 수 있게 한 UI 디자인, 구글 맵이 아침 저녁에 알아서 출퇴근 길을 자동으로 띄워주고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것, 지메일이 내가 답변을 하거나 받아야 하는 묵은 이메일을 자동으로 상단에 ‘follow up?’ 이라는 알림과 함께 보여주는 것 다 여기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 제품 경험의 마법(magical product experience)들이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런 기능들을 접할 때 ‘와, 이거 좋은데?’ ‘오! 이거 내가 정말 원하던 것 이었는데!’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애플의 에어팟 프로가 나한테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설정 > 블루투스 > 새로운 기기 연결’의 사용자 경험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에어팟 케이스를 열자마자 전화기에 바로 연결되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페어링 경험에서 느낀 기쁨은 와우! 

위대한 제품은 위와 같이 기대치를 넘어서고, 또 기대하지 않은 것 까지 배려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분이 좋으면 계속해서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 제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게 된다. (‘야, 이거 써봤어? 이거 장난 아니야~’). YC 및 유명 VC들이 ‘사용자들이 너네 제품을 남에게 써보라고 소문 내고 싶을 정도까지 제품이 좋아야 해’ 라고 말하는 것, 제품의 리텐션(=재사용률)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그로스 해커들, NPS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덕트 마케터의 주장 모두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위대한 제품의 특성을 계량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의 행동과 태도를 바꾼다. 심지어 그것이 비합리적인 결정이고 필요 이상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사용자는 이를 감수하고 열정적으로 그 제품을 사용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봐도 그렇다. 다이슨 청소기의 성능은 일반 진공 청소기 보다 최대 두 세 배 정도인 것 같은데 가격은 다섯 배가 넘게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최애 가전 제품인 다이슨 청소기를 구입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돈을 잘 쓴 제품이라고 생각(혹은 착각)한다. 또, 안드로이드 전화기를 메인으로 사용하는데 에어팟의 매력에 빠진 요즘엔 보조 전화기인 아이폰을 꼭 챙겨 다녀 주머니가 무겁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 동급의 차량보다 비싼 테슬라를 구입하고 회사에서 충전 가능한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로 더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 한 탭으로 연동이 가능한 애플 맵 대신 구글 맵을 사용하기 위해 아이폰에서 주소를 일일히 복사하여 구글 맵에 수동으로 입력하는 사용자들 모두 위대한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추가 비용, 시간, 및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만큼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들을 당기는 힘이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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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제품의 특성을 위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더 다양한 조건과 특성들 역시 유효할 것이다. 다른 제품 담당자들도 나와 상황이 비슷하다면 주요 지표 관리 및 분석, 팀 미팅, 제품 개발 마일스톤 집중 등이 주요 일과 일텐데, 가끔씩 위와 같은 ‘붕 뜬’ 제품 관련 질문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또 그 생각을 바탕으로 본인이 담당한 제품에 적용해 보는 습관을 기르면 올라운드 (all-round) 제품 담당자가 되는 좋은 훈련이 될 것 같다. (물론, 혹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면접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보너스!)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법

동료 제품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말을 너무 안듣고, 본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엔지니어들을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 한다는 불평으로 끝이 나곤 한다. (물론, 엔지니어들은 답답하고 무능한 제품 담당자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다고 불평을 할 것이다).

이런 고충이 있는 이유는 제품을 책임지고 있는 제품 담당자가 제품에 기여를 하는 팀원들에 대한 인사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테크 회사들은 직군 별로 조직이 나뉘어져 있고, 다양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제품을 중심으로 모이는 XFN (= cross-functional) 구조로 팀이 조직되다 보니 팀 내 본인 상관이 아닌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골치 아픈 버그를 몇 개 잡아 달라고 제품 담당자가 어느 엔지니어에게 고쳐달라고 하면, 엔지니어는 해당 버그를 잡기 위해 개고생 해야할 것이 눈에 선한데 다음 인사 평가때 멋진 업적을 써서 낼 수 없을 것 같아 (= ‘불과 버그 몇 개 잡았음’) 각종 핑계를 대면서 제품 담당자가 부탁한 일을 미루거나 빠져나가려고 한다.

제품 담당자 직군을 mini-CEO 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의 상황처럼 제품 담당자가 팀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제품 담당자는 nano-CEO는 커녕, 권위는 하나도 없고 책임은 무한대로 지는 욕받이 역할만 하게 된다. 😭 급하게는 욕받이를 면하고, 궁극적으로는 제품 담당자의 원래 역할인 제품에 큰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제품 담당자는 인사권이 없이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법을 필수적으로 체득해야 한다 (= ‘lead by influence’).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 무엇 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야 한다. 제품 담당자가 의사소통 능력이 좋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잘 전달한다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나의 주장을 상대방이 수용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즉, 설득력이 높아야 한다는 것. 남을 설득 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설명하고, 부연 설명하고… 등등) 한국인 MBA / PM 지망생들이 흔히 ‘PM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은 이 블로그 글 참고), 영어 자체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 정연하게 나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강약 밀당을 조절할 수 있는 active listening 실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사소통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들과 기법들이 물론 여럿 있지만 (예: The Pyramid Principle), 결국엔 많은 연습과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해 관계자들과 1:1을 자주 하는 것 역시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1 미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상대방의 숨은 동기 및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까 예로 든 버그 따위(?)는 고치기 싫은 엔지니어가 인사 평가에 도움이 되는 ‘executive visibility (임원들의 주목)’를 굉장히 원한다는 것을 제품 담당자가 1:1을 통해 알아낸다면 이 정보를 이용하여 ‘사용자 경험 개선 경과 보고’ 임원 미팅에 엔지니어를 초대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Skip level 1:1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두 번 째 방법이다. Skip level 1:1 이란 내 보스의 보스, 혹은 내 이해관계자의 보스와의 1:1 미팅을 지칭한다 (= 나랑 직접 연결된 사람을 ’skip’하고 그 윗 사람을 만난다는 뜻). Skip level 들에게 나의 주장에 대한 피드백과 동의를 받은 후 이해 관계자들과의 1:1에서 ‘너네 보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거 같어’ 라고 말을 하면 내 주장이 조금 더 무게감 있게 전달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해 관계자들들의 권위가 무시 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선을 잘 조절하는 것. 마지막 방법은 1:1 미팅을 통해 이해 관계자들 한 명 씩 설득하여 서서히 ‘대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 명이 설득되면 ‘저 옆에 누구도 여기에 동의해’라고 말하여 그 다음 사람을 설득하고, 이 작업을 반복하여 모두가 대세에 참여를 하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 버리면 가랑비에 옷 젖듯 조직이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문서화 하여 적시에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서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두면, 우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조금 더 정제되는 효과도 있을 뿐더러, 발표 자리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조직 내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고, 또한 아이디어가 ‘공식화’ 되었다는 느낌도 조직 전반에 줄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중구난방할 때 ‘이렇게 생각해 둔 문서가 있는데 참고 하시죠’ 라고 한다면 의견의 교통 정리를 나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단 문서화된 아이디어는 개개인의 ‘발표 전달력’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설득력을 가져야 하므로 주장, 논거, 데이터/수치 등이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정돈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엔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기에, 문서 작성 시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함)

모든 ’soft skill’이 그렇지만 위의 방법들이 성공 공식은 전혀 아니며,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조직을 효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다면 제품 담당자는 비로서 mini-CEO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동료 제품 담당자 분들… mini-CEO 함 가즈아! 💪👊

클리브랜드의 도굴꾼

예전 링크드인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신제품 관련 업무를 많이 하다보니 업무의 많은 부분이 새로운 제품 컨셉에 대한 사용자 반응 조사, 그리고 시장 분석에 따른 새로운 기능들을 제품에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일이었다. 애자일한 자세로 사용자의 반응을 열심히 제품에 반영하기를 반복하며 신제품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체적인 제품을 검토해보니 초반에 기획했던 특정한 사용자 집단을 위한 단순하고 빠른 업무 효율 제품이 아닌 회사 전체 조직을 대상으로 한 복잡한 데이터 포털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팀 내 전략을 담당했던 직원이 한 마디를 한다. ‘우리는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을 위한 제품을 만든 것 같아. (We built for gravediggers in Cleveland’).’ 링크드인은 전문가 기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기에 어떠한 특정 직종의 사용자들의 업무/커리어와 관련하여 어떻게 성공을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제품 개발을 한다. 대도시의 리크루터, 인사담당자, 영업사원, 마케터, 구직자 등이 주 대상인데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이라니… 한마디로 쓸데 없는 사용자 집단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었던 것이다. 

열정이 있는 제품 담당자라면 자신의 제품이 완벽하기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완벽에 최대한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극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여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열정이 과해 주 사용자가 아닌 집단(=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의 니즈마저 완벽하게 반영하려고 하여 전체적인 제품이 너무 복잡해지고 사용성이 되레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해당 제품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상적인 제품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말 그대로 과유불급.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선 내 제품의 잠재 고객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이에 따른 냉혹한 선택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페르소나 기법을 통해 사용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했더라도 페르소나가 너무 많거나, 페르소나의 니즈들이 상충하는 경우는 제품이 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 이탈리아 밀라노 고급 패션쇼 느낌이 나는 옷을 구매하고 싶은 페르소나와 건설 현장에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옷을 원하는 페르소나를 모두 만족시키는 옷가게를 만드려고 해봐라).

애자일, 페르소나, 사용자 중심 디자인 등 멋진 제품 개발 기법을 다 동원 하였음에도 최종 제품이 찜찜하다면 잠시 돌아서서 생각해보라… 우리는 혹시 클리브랜드의 도굴꾼을 위한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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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 기자들과의 press brie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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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 중 일부가 회사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의 연장선으로 옆 팀 부사장님과 함께 테크 기자단을 상대로 press briefing을 열어 직접 회사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고, 또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대답하는 기회를 가졌다. 예전에 PR 자료를 서면으로 제출한 적이 있지만 실제 미국 테크 기자들과 엠바고를 걸어두고 대담을 나누는 경험은 처음! 나는 완전 생초짜인데 하필 상대방은 너무 후덜덜한 매체들 ㅠ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기사들이 좋게 나와서 감사감사 무한 감사 🙏! 또 언제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차후의 성공적인 press briefing을 위해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정리.

1. 짧고 임팩트 있는 소개

내가 이미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기자들은 내가 무슨 사람이고 어떤 역량에서 회사를 대표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럴 때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량으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 라고 짧게 소개를 하면 좋다. 이 때 본인이 어떠한 직군에 있는지 말하는 것 보다 자신의 업무가 풀고자 하는 문제나 목표에 연관시켜 소개를 하면 조금 더 자신을 임팩트 있게 포지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어느 팀에서 마케팅 해요, 제품 개발 해요” 등의 소개 보다는 “100억 명의 사용자의 보안을 항샹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가 더 강력하고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다.

2. Talking point를 미리 확실하게 정리

사실 회사에서 press briefing을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목적이 존재한다. 대략 경과 보고 (inform progress), 담론의 주도 (influence narrative), 혹은 신제품/기술/회사 홍보 (promotion)의 경우가 있는데 이런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화두를 정확히 정리해 두어야 기자들을 상대로 내가 (= 회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예전 링크드인 다녔을 때 Jeff Weiner CEO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우리 마케팅 팀을 엄청 쪼았던(?) 것 중 하나가 예상되는/원하는 신문 기사 헤드라인을 뽑아 오라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 없고 목적에 완벽히 부합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자료를 만들어 내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위를 일상적인 것들과 비유하는 talking point를 준비하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많은 경우 기사에 인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노 단위의 반도체 공정을 설명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정교하고 미세한 것인지 전달하기 어렵지만 ‘머리카락의 8만분의 1’이라고 이야기 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초미세 공정임을 누구나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보다 높은’, ‘달까지 왕복 가능한 거리’, ‘마른 날에 벼락 맞을 확률 보다 낮은’, ‘사람이 숫자를 센다면 수 천 년이 걸리는’ 등의 표현을 십분 활용한다면 talking point들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

3. Keep it real

너무 찬양 일색인 보도 자료는 기자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환영을 받기 힘들다. 사실 이런 성향은 대기업 보다 스타트업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그들의 말만 들으면 너무나 장미빛 미래만 이야기하여 그 회사/제품의 신뢰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진한 점을 강조하지는 않더라도 상황에 맞게 인정을 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갈 계획을 공유하고 제시하는 것이 기자들에게 균형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4. 예상되는 질문들, 특히 피하고자 하는 곤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미리 준비

100이면 110, 내가 꼭 피하고자 하는 질문은 누군가가 던지게 되어있다. 어려운 질문 피했다고 좋아하고 있으면 나중에 서면으로 추가 질의에 포함되어 있다 ㅠㅠ.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누구처럼 눈에서 레이저 쏘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 놓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에서 나왔던 겸손과 인정의 미덕을 보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2에서 준비한 화두로 되돌아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들 중심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대화의 흐름 바꾸는 것은 왠만한 사람이 임기응변으로 하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꼭 미리 준비하여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5. 연습, 연습, 그리고 또 연습

Press briefing에서 내가 준비한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은 반도 안되고 (미리 자료를 공유했을 경우는 더더욱), 대신 대부분의 시간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데 할애한다. 이런 자유로운 포맷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실수를 할 위험이 있다. 특히 경쟁사와의 비교나 기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답변을 해야하며, 공개할 의도가 없는 기밀사항들이 실언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초반에 몇 번 ‘허걱, 잘못하면 이거 말할 뻔했네!’ 하며 뜨끔 한 적이 있다. 기자들에게는 특종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런 실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많은 멘탈 훈련과 연습은 필수이다.

막상 쓰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들만 나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것 보다 더 훌륭한 전략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정리 끝.

Special Bonus: 어느 실리콘밸리의 내공있는 기자님께서 전해주시는 press briefing tip!!

1.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설명 하다 보면 필요 이상의 말, 빈 말, 심지어는 기자와 다투는 일도 벌어진다. 이건 최악의 상황이다. 불필요한 말을 하기보단 말을 안하는게 좋다

2. “나는 그 이슈에 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민감한 질문이 나올때 VP 이상 심지어 CEO 조차도 이런 말을 하더라. 마크 저커버그도 “나는 그 질문에 설명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도 들은 적 있다. 마크가 아니라면 페북에서 누가 이슈를 설명한단 말인가.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방어할 때 이보다 좋은 레토릭은 없다고 생각했다.

3. 내가 얘기한대로 기사화된다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자들은 프레스컨퍼런스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fact에 기반해서 쓰지만)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해석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왜곡이 아니라 해설이며 최근 독자들은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해설하는 기사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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