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담당자와 개발자: 냉정과 열정 사이

테크 회사의 제품 담당자라면 개발자와 한 번 쯤은 싸워봤을 것이다. 다음은 제품 담당자와 개발자가 싸우게 되는 전형적인 상황.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면서 제품 담당자는 기존에 있는 기능들과 코드를 조금 변형하고 이래저래 짜깁기 해서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면 당장 내일도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하고, 엔지니어는 그런 멍청한 방법은 제대로된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며 새로운 infrastructure를 만들고 새로운 코드들을 짜야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기존에 있던 코드를 계속해서 변경하고 여기 저기에 덕지덕지 붙여 제품을 구현하다 보면 코드가 프랑켄슈타인처럼 되어 관리와 디버깅이 매우 까다로워지며, 또한 추후 확장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개발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술 부채가 (technical debt)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새로운 판에서 완벽한 코드만 짜려고 하다간 크리스마스에 맞춰 내야 하는 제품이 초복이 넘어 출시되는 위험이 생긴다. ‘네가 맞다. 너도 맞다’의 황희 정승 코스프레 늪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할 때 제품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개발자를 설득한다: ‘완벽함은 좋음의 가장 큰 적이야. 일단 내가 제안한 대로 하면 어느 정도 좋게 구현이 되니깐, 일단 빨리 만들어서 우리 가설을 증명한 후에 제대로 만들자.’ 

겨우 설득해서 진도를 뺀 제품 담당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개발자는 이 결정에 대해서 탐탁해 하지 않는다. 제품 담당자는 본인이 극적인 타협을 끌어내어 시간 내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자신을 고마워 하지는 못할 망정 왜 탐탁해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발자의 입장이 되어보자. 물론 좋은 제품과 기능들을 사용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제품 담당자 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 출시에 대한 개발자들의 평가는 해당 제품을 구현하는데 존재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멋지고 깔끔하게 풀었는지가 큰 요소가 되고, 이러한 engineering craftmanship을 코드로 표현하고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특히 큰 테크 회사인 경우 해당 업무의 특수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일반적인 잣대로 업무 성과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의 실력을 대변하는 코드가 다른 개발자가 봤을 때 깨끗하고 좋아야 한다. 엘레강스한 코드를 짜고 멋진 시스템 아키텍쳐를 구현할 수 있는데, 제품 담당자의 ‘빨리빨리’ 압박으로 프랑켄슈타인 코드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검사를 맡아야 하는 개발자의 마음이 좋을리 없다. 심지어 성과 평가에 반영이 안된다고 한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업무인 개발자의 (= developer) 입맛에 맞을리 없다. 한두 번은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그것이 반복되는 일상이 된다면 아마 개발자들은 그 제품 담당자를 떠나버릴 것이다.

다시 제품 담당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자. 개발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조건 완벽 코드 모드로 가서 망부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 개발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해당 개발자의 업무를 인정해 주고 그것이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 강조를 하여 그의 사기를 북돋아 주거나, 성과 평가 때 코드 및 기술 문서와 더불어 본인의 기여도를 보여줄 수 있도록 임원 보고서에 개발자를 참조, 혹은 기술적으로 새롭게 접근하기로 결정된 프로젝트로 해당 개발자를 추천하는 배려 등이 노련한 제품 담당자들이 개발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나도 예전 링크드인 온라인 사업부를 담당했을 때 기존 사용자 경험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성과를 최적화 시키는 그로스 해킹팀에 배정된 개발자들은 두 스프린트 단위로 프로젝트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였고, 기능을 전체 팀 앞에서 시연하는 ‘데모 데이’에서 지난 성과를 나누고 기여한 개발자들을 축하해 주었으며, 가끔씩 사장님 / 부사장님을 초대해 해당 업무의 중요성을 팀원들이 느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던 경험이 있다. (사족: 꼬아서 보는 사람들은 임원들이 팀을 방문하는 행위가 오히려 더 부담되고 ‘쫀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리콘밸리에서는 팀에게 사기를 진전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이다. (‘와~ 내가 하는 일이 사장님이 신경 쓸 정도로 회사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구나!’))

흔히 제품 관리는 50% 과학, 50% 예술이라고 한다. 성공적인 제품에 필요한 기획, 사용자에 대한 인사이트,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 프로젝트 관리 기법 등은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치중된 제품 담당자의 필수 실력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이 핵심 내부 이해관계자인 개발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과 조율을 아름답게 끌어내는 실력은 분명 제품 관리의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총 가동해야 하는 이런 제품 담당자의 길… 단연코 쉽지 않지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하고,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위대한 제품의 특성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괜찮은 수 많은 제품 중에서 진정 위대한 제품을 판별할 수 있는 특성이 무엇일까요?’ 

내가 회사에 제품 담당자 인터뷰를 50번 이상 하면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지원자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예전 링크드인 다닐 때 제프 위너 사장님의 블로그 글을 계기로 ‘제품 담당자라면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서 묻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품 담당자 면접 질문으로 너무나 적절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제품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있으면 비교적 쉽게 대답할 수 있고 (반면 제품에 대해 평소의 생각이 깊지 않았다면 ‘붕 뜬’ 느낌의 질문에 당황하기 십상), 또 제품 담당자로써 제품에 대한 철학 및 접근 방법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답은 없지만 좋고 나쁜 답변을 판별하기 쉬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남에게 설득력 있게 답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제품 몇 개를 접하면서 평소 가지고 있던 두리뭉실한 답변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제하여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위대한 제품의 필요 조건으로 기본적인 기능들을 사용자들에게 문제 없이 제공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우리는 화려하고 멋진 새로운 기능만 추구하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혁신’ 제품들을 너무나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여러 신용카드 정보를 하나의 전자식 신용카드에 넣어주는 ‘Coin’이라는 제품이 있었다 (예전 블로그 포스트 참고). 뚱뚱한 남자의 지갑은 멋대가리가 없기에 실리콘밸리의 미니멀리스트 성향의 테크쟁이들은 너도나도 이 ‘위대한’ 제품을 선주문 하였는데, 막상 제품이 배달되어 사용해 보니 15% 정도의 결제 실패율이 나는 것이었다. 신용카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결제의 신뢰도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그 아무리 멋진 혁신 기능이 들어갔다 해도 이 제품은 위대하긴 커녕 그냥 망작인 것이다. 영어로 이런 상황을 ‘failed on basic execution’이라고 하는데, 이 기본적인 것들을 완벽하고 문제 없이 실행하는 것이 위대한 제품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된다.

기본 조건이 충족 된 상태에서, 위대한 제품의 특성 중 하나는 제품의 성능이 사용자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는다는 것이다 (‘performance exceeds the user’s expectations by a mile’). 보통 우리는 어느 문제나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사용하는데, 이 때 대개 어느 정도의 문제와 니즈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기 나름이다. 진공 청소기를 사용했을 때 카펫이 깨끗해지는 정도, 혹은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속할 때 느껴지는 승차감 정도 등 수 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예상하는 기대치가 있는 것이다. 위대한 제품은 이런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할 정도의 멋진 제품 성능을 보여준다. 다이슨 청소기로 처음 카펫을 밀었을 때 느끼는 흡입력 및 불과 몇 십 초 만에 수북히 빨린 먼지들을 본 사람들은 예상치를 뛰어 넘은 ‘고성능’이 무엇인지 몸소 느껴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테슬라 자동차의 랙 (lag) 없는 가속도와 승차감은 사용자의 기대치를 훨씬 능가하여 고객들을 만족 시킨다.

셋 째,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음과 동시에 사용자가 기대하지 않은 부분까지 배려하여 즐거운 사용자 경험을 전달한다 (‘surprise and delight’). 페이스북 메신저가 ‘따봉’ 이모티콘을 찾지 않고 한번에 보낼 수 있게 한 UI 디자인, 구글 맵이 아침 저녁에 알아서 출퇴근 길을 자동으로 띄워주고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것, 지메일이 내가 답변을 하거나 받아야 하는 묵은 이메일을 자동으로 상단에 ‘follow up?’ 이라는 알림과 함께 보여주는 것 다 여기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 제품 경험의 마법(magical product experience)들이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런 기능들을 접할 때 ‘와, 이거 좋은데?’ ‘오! 이거 내가 정말 원하던 것 이었는데!’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애플의 에어팟 프로가 나한테 그러한 느낌을 주었다. ‘설정 > 블루투스 > 새로운 기기 연결’의 사용자 경험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에어팟 케이스를 열자마자 전화기에 바로 연결되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페어링 경험에서 느낀 기쁨은 와우! 

위대한 제품은 위와 같이 기대치를 넘어서고, 또 기대하지 않은 것 까지 배려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분이 좋으면 계속해서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 제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게 된다. (‘야, 이거 써봤어? 이거 장난 아니야~’). YC 및 유명 VC들이 ‘사용자들이 너네 제품을 남에게 써보라고 소문 내고 싶을 정도까지 제품이 좋아야 해’ 라고 말하는 것, 제품의 리텐션(=재사용률)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그로스 해커들, NPS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덕트 마케터의 주장 모두 ‘사용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위대한 제품의 특성을 계량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의 행동과 태도를 바꾼다. 심지어 그것이 비합리적인 결정이고 필요 이상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사용자는 이를 감수하고 열정적으로 그 제품을 사용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봐도 그렇다. 다이슨 청소기의 성능은 일반 진공 청소기 보다 최대 두 세 배 정도인 것 같은데 가격은 다섯 배가 넘게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최애 가전 제품인 다이슨 청소기를 구입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돈을 잘 쓴 제품이라고 생각(혹은 착각)한다. 또, 안드로이드 전화기를 메인으로 사용하는데 에어팟의 매력에 빠진 요즘엔 보조 전화기인 아이폰을 꼭 챙겨 다녀 주머니가 무겁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 동급의 차량보다 비싼 테슬라를 구입하고 회사에서 충전 가능한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로 더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 한 탭으로 연동이 가능한 애플 맵 대신 구글 맵을 사용하기 위해 아이폰에서 주소를 일일히 복사하여 구글 맵에 수동으로 입력하는 사용자들 모두 위대한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추가 비용, 시간, 및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만큼 위대한 제품은 사용자들을 당기는 힘이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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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제품의 특성을 위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더 다양한 조건과 특성들 역시 유효할 것이다. 다른 제품 담당자들도 나와 상황이 비슷하다면 주요 지표 관리 및 분석, 팀 미팅, 제품 개발 마일스톤 집중 등이 주요 일과 일텐데, 가끔씩 위와 같은 ‘붕 뜬’ 제품 관련 질문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또 그 생각을 바탕으로 본인이 담당한 제품에 적용해 보는 습관을 기르면 올라운드 (all-round) 제품 담당자가 되는 좋은 훈련이 될 것 같다. (물론, 혹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면접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보너스!)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법

동료 제품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말을 너무 안듣고, 본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엔지니어들을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 한다는 불평으로 끝이 나곤 한다. (물론, 엔지니어들은 답답하고 무능한 제품 담당자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다고 불평을 할 것이다).

이런 고충이 있는 이유는 제품을 책임지고 있는 제품 담당자가 제품에 기여를 하는 팀원들에 대한 인사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테크 회사들은 직군 별로 조직이 나뉘어져 있고, 다양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제품을 중심으로 모이는 XFN (= cross-functional) 구조로 팀이 조직되다 보니 팀 내 본인 상관이 아닌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골치 아픈 버그를 몇 개 잡아 달라고 제품 담당자가 어느 엔지니어에게 고쳐달라고 하면, 엔지니어는 해당 버그를 잡기 위해 개고생 해야할 것이 눈에 선한데 다음 인사 평가때 멋진 업적을 써서 낼 수 없을 것 같아 (= ‘불과 버그 몇 개 잡았음’) 각종 핑계를 대면서 제품 담당자가 부탁한 일을 미루거나 빠져나가려고 한다.

제품 담당자 직군을 mini-CEO 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의 상황처럼 제품 담당자가 팀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제품 담당자는 nano-CEO는 커녕, 권위는 하나도 없고 책임은 무한대로 지는 욕받이 역할만 하게 된다. 😭 급하게는 욕받이를 면하고, 궁극적으로는 제품 담당자의 원래 역할인 제품에 큰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제품 담당자는 인사권이 없이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법을 필수적으로 체득해야 한다 (= ‘lead by influence’).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 무엇 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야 한다. 제품 담당자가 의사소통 능력이 좋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잘 전달한다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나의 주장을 상대방이 수용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즉, 설득력이 높아야 한다는 것. 남을 설득 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설명하고, 부연 설명하고… 등등) 한국인 MBA / PM 지망생들이 흔히 ‘PM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은 이 블로그 글 참고), 영어 자체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 정연하게 나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강약 밀당을 조절할 수 있는 active listening 실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사소통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들과 기법들이 물론 여럿 있지만 (예: The Pyramid Principle), 결국엔 많은 연습과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해 관계자들과 1:1을 자주 하는 것 역시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1 미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상대방의 숨은 동기 및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까 예로 든 버그 따위(?)는 고치기 싫은 엔지니어가 인사 평가에 도움이 되는 ‘executive visibility (임원들의 주목)’를 굉장히 원한다는 것을 제품 담당자가 1:1을 통해 알아낸다면 이 정보를 이용하여 ‘사용자 경험 개선 경과 보고’ 임원 미팅에 엔지니어를 초대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Skip level 1:1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두 번 째 방법이다. Skip level 1:1 이란 내 보스의 보스, 혹은 내 이해관계자의 보스와의 1:1 미팅을 지칭한다 (= 나랑 직접 연결된 사람을 ’skip’하고 그 윗 사람을 만난다는 뜻). Skip level 들에게 나의 주장에 대한 피드백과 동의를 받은 후 이해 관계자들과의 1:1에서 ‘너네 보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거 같어’ 라고 말을 하면 내 주장이 조금 더 무게감 있게 전달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해 관계자들들의 권위가 무시 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선을 잘 조절하는 것. 마지막 방법은 1:1 미팅을 통해 이해 관계자들 한 명 씩 설득하여 서서히 ‘대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 명이 설득되면 ‘저 옆에 누구도 여기에 동의해’라고 말하여 그 다음 사람을 설득하고, 이 작업을 반복하여 모두가 대세에 참여를 하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 버리면 가랑비에 옷 젖듯 조직이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문서화 하여 적시에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서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두면, 우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조금 더 정제되는 효과도 있을 뿐더러, 발표 자리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조직 내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고, 또한 아이디어가 ‘공식화’ 되었다는 느낌도 조직 전반에 줄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중구난방할 때 ‘이렇게 생각해 둔 문서가 있는데 참고 하시죠’ 라고 한다면 의견의 교통 정리를 나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단 문서화된 아이디어는 개개인의 ‘발표 전달력’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설득력을 가져야 하므로 주장, 논거, 데이터/수치 등이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정돈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엔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기에, 문서 작성 시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함)

모든 ’soft skill’이 그렇지만 위의 방법들이 성공 공식은 전혀 아니며,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조직을 효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다면 제품 담당자는 비로서 mini-CEO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동료 제품 담당자 분들… mini-CEO 함 가즈아! 💪👊

조직의 동의를 얻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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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담당자의 역할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관계들을 조율하고 설득하여 제품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부서 간의 협업으로 팀이 구성 및 진행되고 (cross-functional, XFN 이라고 흔히 지칭), 제품 담당자들이 이런 협업 팀원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해관계자들의 상충된 목표를 조율하는 것이 어지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전략적 중요도 및 복잡도가 높은 제품을 담당할수록 다양한 부서의 높으신 분들의 ‘좋아요’까지 받아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제품 출시일은 멀어져 가고 팀원들은 기가 빠지며 결국엔 모두가 제품 담당자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즉,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완전 총체적 난국. ㅠㅠ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제품 담당자는 조직의 동의를 얻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직 구성원 및 의사결정권자들의 ‘오케이’를 받는 방법은 사람마다, 또 조직 특성 마다 다르겠지만 다음은 내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한 몇 가지 ‘빠르게 동의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기법’들을 정리 및 공유:

기본 (default) 상황을 yes로 설정하고 이해관계자들에게 반박을 하도록 포지셔닝 하기

나는 예전에 이메일 상으로 어떤 안건에 대한 동의를 구할 때 그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렇게 해도 괜찮나요?’ 라고 묻곤 했다. 이런 경우는 이메일 수신자가 ‘오케이’라고 답변을 하지 않는 이상 기본 상황이 ‘안됨’이다. 행여나 안건에 동의를 전적으로 한다고 해도 답변이 오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다.

요즘엔 많은 경우 ‘위 안건을 진행할 예정이니, 피드백 및 기타 의/이견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식으로 이메일 스타일을 바꾸어 쓰고 있다. 이 경우엔 내가 강력하게 안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수신자에게 전달할 수 있고, 동시에 ‘잘 진행되는 일인 것 같은데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면 굳이 꼬투리 잡을 필요 없지’식의 심리를 자극시켜 그들이 동의하는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포지셔닝은 이메일 답변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암묵적 동의’라고 우길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가능성을 고려해 ‘이견이 있으시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답변 주세요’ 식으로 타임라인을 정해주면 예의마저 챙길 수 있다.

이해관계자 중 의사결정권자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기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제품 출시 결정을 할 때 PR 부서는 그 제품에 대한 홍보 및 예상되는 질문/논란에 대한 대응을 제품팀에게 지원을 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이해관계자 이지만 의사결정권자는 아니다. 즉,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면 PR 부서는 제품 팀에게 그 문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강력한 제품 출시 지연 권고는 할 수 있어도, 그 위험성을 이유로 제품 출시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사결정권이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선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사결정권자들과 그들의 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순수 이해관계자들을 구분하고 그들의 요구를 다르게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메일로 동의를 구하는 경우 To 에 의사결정권자를 열거하고 나머지는 Cc로 처리한 후 의사결정권자들을 직접 호명하여 그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이 꽤 괜찮은 전략이다 (예: Peter, please approve this plan) . 물론, 이것은 의사결정권이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랬다간 제품 담당자로써 처참히 실패하는 지름길). 반드시 사전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취합 및 조율은 하되, 최종 의사결정에 있어서 최단거리의 길을 (=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 사람들 관여) 택하라는 것이다.

짧은 주기의 업데이트를 통해 작은 변화에 대한 동의를 반복적으로 구하기

제품 담당 멘토링을 받으면 가장 자주 듣는 ‘제품 담당자들의 가장 큰 실수’가 있는데, 사무실 구석에서 몇 주 간 고생해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제품 제안서를 써 왔더니 그 모두가 무시하고 코드 한 줄 쓰여지기 전에 폐기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조직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으면 실현 가능성이 0으로 수렴 되기에, 제품 담당자는 제품에 대한 비전과 아이디어 만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럴 때 효과적인 것이 짧은 주기의 업데이트를 이해관계자들과 자주 하는 것이다. 잦은 만남을 가지면 동의를 해야할 부분들을 각개 격파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작은 부분들 하나 씩 의/이견을 취합하여 조율하고 동의에 이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 agile한 공감대 형성) 큰 그림이 완성되는 상황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개구리를 상온의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는 것과 뜨거운 물을 갑자기 부어 화들짝 놀래키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어느 크기의 변화가 동의를 얻기 더 쉬울까?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구분하기

만약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없다면 빠르게 동의에 이를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의견의 충돌 및 정-반-합의 과정은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건강한 스트레스이기에 무조건 다른 의견의 형성을 막는 전략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안건의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없을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의견들을 빨리 취합하여 조율하는 것인데, 이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들이 제시한 의견이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Blocker란 제시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해당 안건을 진행시킬 수 없다는 것이고 strong opinion이란 말 그대로 당사자의 (강한) 의견이라는 것인데, 의견을 이 두 가지로 분류한 후 blocker를 위주로 문제를 해결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

아까 위의 예를 다시 들어, 어느 제품을 출시할 때 높은 가격 책정으로 인해 부정적인 언론이 우려되어 단가를 인하할 수 있을 때 까지 출시 유보를 주장한 PR/마케팅 부서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제품 담당자는 해당 부서에게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구분해 달라고 요청하고, 부정적인 언론이 제품 수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사업 성과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 때문에 blocker라고 답변을 받으면 재고를 하면 되고, 반면 부정적인 언론이 지금 상승 중인 회사 선호도 이미지에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을 받으면 (대체적으로, 특히 데이터가 없을 경우) strong opinion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blocker가 아니라고 의견을 폐기하는 것 보다 다음 버전 혹은 추후 집고 넘어가야 할 상황으로 명시하고 나중에 까먹지 않고 처리한다면 협업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까지 만들 수 있다.

나도 최근에 큰 변화와 논란이 수반되는 프로젝트 몇 개를 수행하면서 이 기법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 내가 담당하는 제품과 관련하여 받은 80%의 의견들은 blocker가 아니었다. (상상해보라, 그 80%가 blocker인 줄 알고 다 대응하고 전략을 수정하였으면 걸렸을 추가 시간과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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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 기법들이 그럴 듯 하게 들려도 사실 모두의 동의를 빠르게 이끌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동의를 얻지 못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제품 담당자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제품 담당자는 그 제품의 성공에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핑계는 제품 담당자로써 능력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정연한 논리, 제품에 대한 뜨거운 열정,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데이터, 그리고 위 기법들 + alpha를 총 동원하여 조직의 동의를 얻고 제품을 성공의 방향으로 계속 끌고 나가야 한다. (Aㅏ… 힘들어 ㅠㅠ)

프로덕트 매니저 개론

작년 이 맘 때 쯤 ‘프로덕트 마케터 개론’이라는 글을 통해 프로덕트 마케팅 직군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어느새 그 화려한 마케터의 삶을 접고 제품 담당자로 커리어를 전환한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사업을 전반적으로 총괄하는 업무를 수 년 동안 해 오면서 제품에 관여를 많이 해 왔지만 회사 연구개발 부서에서 엔지니어들과 머리를 맞대고 제품을 hands-on으로 담당해서 만드는 일은 지난 일 년이 처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는 척 하지 마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이 가는 것이, ‘위에서’ 업무를 조율하고 지시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현장’에서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제품 담당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또 훌륭한 제품 담당자에서 돋보이는 성향들을 관찰하고, 습득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주의: 이것은 나의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 된 것이고, 실제로 회사마다 제품 담당자의 정의 및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아래의 내용을 ‘canonical definition’으로 받아드리면 곤란 하다는 것을 미리 공지함.

제품 담당자란? (Who is a product manager?)

“Product Manager is the ultimate person responsible for the success of the product — he/she makes the ‘magic’ happen.”

간단히 말해 제품 담당자는 해당 제품의 전반적인 성공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느 ‘무엇 (what)’으로 ‘누구 (who)’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성과를 평가받는 직군이다. 제품의 성공 여부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이기에 ‘CEO of the product’이라고도 하지만 CEO와 다르게 제품 담당자들을 제품에 관여하는 사람들에 대해 인사권이 전혀 없는 ‘이빨 없는 호랑이’이다. 엔지니어들은 제품 담당자가 원하는 기능을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멋지지 않다고 무시하면 그만, 프로덕트 마케터들이 제품 담당자가 정의한 고객 페르소나 밖의 타겟층에게 마케팅을 해도 제품 담당자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을 별로 없다. (특히, 그 마케팅을 통해 매출이 확 늘어난다면 더더욱!)

오히려, 제품 담당자는 미식 축구의 ‘쿼터백’과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식 축구에서 쿼터백은 공을 남에게 건내 주거나 패스를 통해 팀이 전진하도록 하는 업무를 가진, 팀에서 가장 주목받고 중요한 포지션이다. 쿼터백은 스냅이 이루어지면 재빨리 어디가 막혔고 어느 선수가 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의사결정을 해야만 한다. 제품 담당자도 제품의 개발 및 출시에 있어 여러가지 난관을 재빨리 파악하여 팀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해야한다. 게다가 감독처럼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고 동료 엔지니어와 함께 데이터를 보면서 직접 (hands-on)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쿼터백은 경기를 이기면 팀을 대표해서 주목을 받고 지면 팀을 대표해서 욕을 먹는데, 이 역시 제품 담당자의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비록 제품 담당자가 코딩 한 줄 하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심지어 칭찬을 받으면 팀에게 공을 돌리고, 욕을 먹으면 혼자 짊어지는 미덕도 역시 비슷.)

제품 담당자의 주 업무는?

위 제품 담당자의 정의의 마지막에 “he/she makes the ‘magic’ happen”이라는 문구가 있다. 일부로 멋지게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저 단어 외로는 광범위하고 때마다 너무 다른 제품 담당자의 주 업무를 표현하기 어려워서 쓴 것이다. 물론, 제품 담당자의 기본 업무는 엔지니어와 같이 협업하여 멋진 제품을 정의하고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다 (define, build, and release the product to market).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인 제품의 필요조건이지 절대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아니, 그 보다 더 본질적으로 ‘제품’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너무나 당연한 기본 업무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업무 외에 제품의 성공에 기여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제품 담당자들의 주 업무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숨은 니즈 파악

헨리 포드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내가 고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봤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고객들에게 직접 그들의 니즈를 물어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 지 파악하는 것은 혁신적인 제품일수록 어렵다. 그것을 경험하기 전 까지는 그러한 제품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라는 제품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더 빠른 말이 고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었다. 아이폰을 보기 전에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전화기에 옮겨 놓는 것이 대중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진정한 니즈는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더 편리하고 빨리 갈 수 있는 수단이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이동 중에서도 계속해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제공하는 인사이트는 이러한 고객의 니즈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어도 정말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어떠한 경험과 제품이 그런 궁극적인 니즈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하고 파악하는 것은 제품 담당자의 몫이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어려운 업무이다.

살을 깎는 트레이드오프 (trade-off)

100이면 100, 내가 아는 모든 제품 담당자들은 할 것은 너무 많고, 주어진 로드맵을 온전히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엔지니어 팀원들은 너무 적다고 불평을 한다. 단 한 명도 팀에 엔지니어가 넉넉하여 여유롭다고 하는 경우를 보지 못하였다. 항상 제품 담당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제품과 그 제품을 만들 때 현실적으로 닥치는 기술적인 난관, 버그, 제품 방향의 긴급 수정 등의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제품 담당자의 핵심 업무는 제품의 성능, 기능, 출시 기한을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꼭 필요한 기능 (must-have) 중에서 또 다시 추리고, 엔지니어들과 묘수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하고, 고객들이 이탈한다고 ‘협박’하는 영업팀과 마케팅팀들의 원성을 원활하게 조율하되, 제품의 궁극적인 비전에서 벗어나지 않는 트레이드오프 결정 과정은 과학이 아닌 예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팔방미인 코스프레 (jack of all trades)

이 외에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있어 막히거나 더딘 부분이 있으면 제품 담당자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그것이 자잘하거나 제품 담당자의 ‘job description’ 밖에 있는 것일지라도 제품의 성공을 막는 그 어느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제품 담당자의 업무가 되는 것이다. 고객 인터뷰를 하거나, 고객의 항의성 C/S 전화를 받고, 영업팀에서 급하게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주고,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수습하기 위해 당장 뛰어 나가는… ‘제품 담당자 직군 매뉴얼’에 쓰여있진 않지만 제품 담당자들이 때와 상황에 맞추어 해야하는 업무이다. 이런 것들을 다 해결할 때 비로소 ‘magic’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훌륭한 제품 담당자가 되기 위하여…

동료 제품 담당자들과 ‘우리 업’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훌륭한 제품 담당자가 되기 위해선 계량화 하기 어려운 ‘소프트’한 것들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는 결론을 자주 내리게 된다. 실제로 내가 존경하고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제품 담당자들을 관찰하고, ‘전설적인’ 제품 담당자들의 글을 읽고 제품을 경험하며, 또 그들에게서 종종 조언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soft skill’들의 훈련과 발전이 훌륭한 제품 담당자의 길로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기술적인 호기심 가득 (Technically Curious)

최근에 제품 담당자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코딩 할 줄 알아야 되나요?”, “기술적인 지식이 깊어야 하나요?”이다. 특히 컨설팅 및 MBA 출신 친구들이 다른 ‘스펙’은 다 되는데 기술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제품 담당자에 지원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을 많이 본다. 몇 달 전 Hunter Walk와 이 부분에 있어서 Q&A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물어봤는데 그의 대답이 이 질문에 매우 적절한 것 같다.

“You don’t have to be technical per se, but you need to be technically curious. (기술적일 필요는 꼭 없지만, 기술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해요)”

테크 회사에서 제품 담당자는 기술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의 성공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이에 기술을 어떻게 이용해서 어떤 멋진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런 호기심 없이는 세상을 바꾸는 훌륭한 제품을 상상해 내고, 또 그것을 현실적인 제약에 맞추어 성공적으로 구현해 내는 훌륭한 제품 담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 What & WHY

무엇을 만들 것인가, 즉 제품에 대한 정의를 하는 것은 제품 담당자의 기본 역량이자 업무이다. 하지만 뛰어난 제품 담당자들은 제품 정의에 대한 명확한 논리와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 왜 주어진 상황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왜 이러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논리와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제품 담당자들과 일하는 팀은 대체적으로 능률이 더 높으며 제품의 성과도 훨씬 좋은 편이다.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제품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기에, 애매하고 대충 정의된 제품을 만들 때 늘 따라오는 trial & error 및 기타 ‘삽질’과 짜증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추상화 (Abstraction)

제품을 개발할 때 고객들이 가지는 문제, 그리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잘 추상할 수 있으면 문제의 어느 특정한 부분에 발목 잡히지 않고 문제의 전반적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 이에 필요한 해법의 방향과 전략을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더 빠른 말을 원하는 고객’들의 진정한 니즈는 이러한 추상화 과정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추상화를 못했다면 아마 더 단단한 말굽, 더 공기역학적인 안장, 말의 근육량을 늘릴 수 있는 사료들에 집중했을 것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상화의 과정은 자세한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점. 자세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큰 그림만 겉핥기 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너무 과하게 추상을 하여 현실과 너무 동 떨어지는 상상을 하는 것은 큰 꿈을 꾸는 제품 담당자가 아닌 허황된 생각만 하는 바보라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빠른 말’에서 얻은 ‘아 고객들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빨리 이동하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인사이트를 ‘순간 이동 텔레포터’ 제품으로 풀려는 꼴)

유연함 (Flexibility)

팔방미인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선 유연한 성격 및 뛰어난 ‘현장 적응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유연하지 못하고 ‘대쪽’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답답한 상황에 스트레스만 쌓이고 자신이 정한 제품 담당자의 역할에 대한 제한적인 ‘행동 반경’ 때문에 제품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제품의 비전과 제품의 핵심적인 가치에 대해선 확고함이 필요하겠지만 비전과 전략만큼 중시되는 제품 담당자의 실행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유연함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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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담당자라는 직군…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하다고 하지만 기존 직군들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새롭고, 이에 직군에 대한 정의와 역할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앞으로 더 많은 훌륭한 제품 담당자들의 활약을 통해 이 직군이 조금 더 명확해지고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직업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나 역시 이 개인적인 바램에 일조할 수 있도록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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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이 정의는 내 친구이자 훌륭한 제품 담당자로 십 수 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Sachin Rekhi에게서 차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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