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담당자와 개발자: 냉정과 열정 사이

테크 회사의 제품 담당자라면 개발자와 한 번 쯤은 싸워봤을 것이다. 다음은 제품 담당자와 개발자가 싸우게 되는 전형적인 상황.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면서 제품 담당자는 기존에 있는 기능들과 코드를 조금 변형하고 이래저래 짜깁기 해서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면 당장 내일도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하고, 엔지니어는 그런 멍청한 방법은 제대로된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며 새로운 infrastructure를 만들고 새로운 코드들을 짜야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기존에 있던 코드를 계속해서 변경하고 여기 저기에 덕지덕지 붙여 제품을 구현하다 보면 코드가 프랑켄슈타인처럼 되어 관리와 디버깅이 매우 까다로워지며, 또한 추후 확장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개발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술 부채가 (technical debt)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새로운 판에서 완벽한 코드만 짜려고 하다간 크리스마스에 맞춰 내야 하는 제품이 초복이 넘어 출시되는 위험이 생긴다. ‘네가 맞다. 너도 맞다’의 황희 정승 코스프레 늪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할 때 제품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개발자를 설득한다: ‘완벽함은 좋음의 가장 큰 적이야. 일단 내가 제안한 대로 하면 어느 정도 좋게 구현이 되니깐, 일단 빨리 만들어서 우리 가설을 증명한 후에 제대로 만들자.’ 

겨우 설득해서 진도를 뺀 제품 담당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개발자는 이 결정에 대해서 탐탁해 하지 않는다. 제품 담당자는 본인이 극적인 타협을 끌어내어 시간 내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자신을 고마워 하지는 못할 망정 왜 탐탁해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발자의 입장이 되어보자. 물론 좋은 제품과 기능들을 사용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제품 담당자 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 출시에 대한 개발자들의 평가는 해당 제품을 구현하는데 존재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멋지고 깔끔하게 풀었는지가 큰 요소가 되고, 이러한 engineering craftmanship을 코드로 표현하고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특히 큰 테크 회사인 경우 해당 업무의 특수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일반적인 잣대로 업무 성과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의 실력을 대변하는 코드가 다른 개발자가 봤을 때 깨끗하고 좋아야 한다. 엘레강스한 코드를 짜고 멋진 시스템 아키텍쳐를 구현할 수 있는데, 제품 담당자의 ‘빨리빨리’ 압박으로 프랑켄슈타인 코드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검사를 맡아야 하는 개발자의 마음이 좋을리 없다. 심지어 성과 평가에 반영이 안된다고 한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업무인 개발자의 (= developer) 입맛에 맞을리 없다. 한두 번은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그것이 반복되는 일상이 된다면 아마 개발자들은 그 제품 담당자를 떠나버릴 것이다.

다시 제품 담당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자. 개발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조건 완벽 코드 모드로 가서 망부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 개발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해당 개발자의 업무를 인정해 주고 그것이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 강조를 하여 그의 사기를 북돋아 주거나, 성과 평가 때 코드 및 기술 문서와 더불어 본인의 기여도를 보여줄 수 있도록 임원 보고서에 개발자를 참조, 혹은 기술적으로 새롭게 접근하기로 결정된 프로젝트로 해당 개발자를 추천하는 배려 등이 노련한 제품 담당자들이 개발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나도 예전 링크드인 온라인 사업부를 담당했을 때 기존 사용자 경험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성과를 최적화 시키는 그로스 해킹팀에 배정된 개발자들은 두 스프린트 단위로 프로젝트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였고, 기능을 전체 팀 앞에서 시연하는 ‘데모 데이’에서 지난 성과를 나누고 기여한 개발자들을 축하해 주었으며, 가끔씩 사장님 / 부사장님을 초대해 해당 업무의 중요성을 팀원들이 느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던 경험이 있다. (사족: 꼬아서 보는 사람들은 임원들이 팀을 방문하는 행위가 오히려 더 부담되고 ‘쫀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리콘밸리에서는 팀에게 사기를 진전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이다. (‘와~ 내가 하는 일이 사장님이 신경 쓸 정도로 회사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구나!’))

흔히 제품 관리는 50% 과학, 50% 예술이라고 한다. 성공적인 제품에 필요한 기획, 사용자에 대한 인사이트,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 프로젝트 관리 기법 등은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치중된 제품 담당자의 필수 실력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이 핵심 내부 이해관계자인 개발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과 조율을 아름답게 끌어내는 실력은 분명 제품 관리의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총 가동해야 하는 이런 제품 담당자의 길… 단연코 쉽지 않지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하고,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마케팅 강의

며칠 전 산호세 주립 대학교 교수님의 초청으로 하이테크 마케팅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 대상은 마케팅을 공부하는 경영대 학생들. 하이테크 마케팅의 특이점, 그리고 그에 따라 변하는 마케팅 조직을 주로 설명한 후 직접 진두지휘를 했던 (또 대중에 공개할 수 있는) 그로스 및 제품 마케팅의 실례 공유, 마무리로 마케팅 실무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 주는 짧은 조언 세 개. 강의 후 10분 정도 질문의 시간을 남겨 두었는데 수업 내용 중 추가적으로 궁금했던 것, 테크 회사 입사 방법, 전반적인 커리어 조언 등의 질문들이 수업 후 까지 계속된 것을 봤을 때 나름 선방(?) 했다고 생각. 단, 교수님 수업에 누가 안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불안불안.

Voice-over가 많이 필요한 발표 자료지만 기록 및 공유 차원에서 자료를 번역해서 블로그에 투척.

번역본

수업 자료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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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해킹 – 웹사이트 A/B 실험에 대한 7가지 법칙

몇 달 전 ‘그로스해킹 – 이보다 더 과학적일 수 없다’ 라는 포스팅을 통해 계량적으로 접근하는 그로스 해킹이 ‘논문’ 형식으로 발표 된다는 사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며칠 전 내가 예전에 다녔던 링크드인과 그 회사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웹사이트 A/B 실험에 대한 7가지 법칙’이라는 논문을 2014년 KDD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비록 몇 년 지난 자료지만 지금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 내 경험을 덧붙여 짧게 정리해서 공유.

(참고: 여기서 ‘법칙’은 rule of thumb, 즉 ‘어림잡은, 혹은 대략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해석하면 됨)

1. 작은 변화가 주요 지표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나의 그로스 해킹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그로스 해킹의 핵심은 속도감 있게 많은 양의 실험을 수행하여 (홈런이 아닌) 단타로 점수를 내는 것이다. 많은 실험을 빨리 실행하기 위해서는 코딩을 적게 해야하고, 코딩을 적게 하려면 제품과 사용자 경험을 가급적이면 최소한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자주 ‘값 싼’ 실험을을 계속적으로 하다보면 ‘어쩌다가 걸려서’ 홈런이 나오는 땡큐한 상황이 간간히 나올 때가 있다. 논문은 MSN 웹사이트의 링크를 ‘새 탭에 보이기’, 그리고 Bing 검색 엔진의 검색 결과 색깔 실험이 그런 좋은 예라고 언급한다. 나 역시 링크드인에 있을 때 Upgrade 버튼을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꾸어서 좋은 결과를 내었었고, 업그레이드 페이지 (chooser page라고 부름)에 배열을 다르게 함으로 수십 억 단위의 연간 추가 수익을 냈던 경험이 있다. (아래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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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부분의 경우 실험의 결과가 지표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1 법칙으로 흥분 했다면 제발 워~ 워~.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된 부분인데 대부분의 실험은 지표에 미미하거나 아예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큰 변화를 목격한다면 홈런을 외치기 보다는 어디 코드에 버그가 있는지 의심부터 해 봐야 하는 것이다. 잊지 말자… 단타싸움!

3. 케바케 (Your Mileage Will Vary)

어느 다른 회사의 어떠한 온라인 실험이 대박을 쳤다고 나도 그것을 따라하면 대박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많은 투자를 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고객 구성, 제품의 특성, 주변 상황 등 모든 것 들이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실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일 수 밖에 없다. 내가 파란색 버튼에서 노란색 버튼으로 재미 봤다고 해서 내가 아는 스타트업들에게 ‘모두 버튼을 노란색으로 바꾸세요~’ 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대신 이렇게 남들이 성공했을 때 사용했던 접근했던 방식을 best practice로 일반화할 수 있다면 (예: 몇 가지 색깔의 변화로 실험을 해 보세요) 자신의 상황에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꼭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것은 절대 될 수가 없어’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답정너’인 태도보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실험을 했는데 잘 안되었던 이유는 이런것 저런것 같다 라고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더 개선된 아이디어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는게 더 바람직하다.

4. 웹사이트의 속도는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

어떤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실험할 때 그것이 실제 웹사이트 속도에 얼마나 미치는지 점검하는 것이 좋다. 큰 회사들을 latency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들이 다 있겠지만 이런 화려한 도구가 없더라도 웹 브라우저의 디버그 툴 (크롬의 경우 오른쪽 클릭 > Inspect > Network) 을 사용, 페이지 각 콤포넌트들의 로딩 시간 등을 잴 수 있다. 인터넷 기반 서비스는 모든 것이 다 같은 경우 (all else equal) 웹사이트의 속도가 느려지면 핵심 지표의 성과도 낮아지기 마련이기에 반드시 신경쓰고 모니터링 하는 버릇을 들이자.

웹사이트 로딩 시간과 주요 지표는 보통 반비례 관계를 가진다. (이미지 논문에서 발췌)

5. 클릭 이탈을 막는 것은 어렵다. 클릭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은 (그나마) 쉽다

Bing 검색엔진의 주요 지표중 하나는 클릭 이탈이다 (검색 결과를 클릭하지 않고 사용자가 이탈해 버리면 검색 결과가 형편 없다는 뜻).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들이 이 지표 움직이려고 별 노력 다 해봤는데 의미있게 움직이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용자가 어디 클릭하는지는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 법칙에서 나온 사용자 행동을 일반화 시켜 받아드리면 장바구니 담아두고 결제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잡는 것 보다 장바구니에 아이템을 담을 때 조금 더 비싸거나 사용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투자를 하는 등, 전자상거래 분야에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6. 복잡한 실험 설계를 피해라

‘실험 하는 김에 이런 것도 한번 알아보면 좋지 않을까?’의 똑똑해 보이려는 생각과 행동이 의도치 않은 문제점을 유발할 수 있다. A/B 테스트가 아닌 A/B/C/D 등의 다변수 실험을 할 경우 더 많은 트래픽이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코드도 더 복잡해지고 (버그 위험!) orthogonality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왜곡된 실험 결과를 초래, 심지어는 웹사이트의 ‘폭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좋은(?) 예로 Knight Capital이라는 금융회사가 버그가 있는 코드를 실험 환경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배포를 하여 $460M (4척6백만 달러!)라는 손실을 낸 일화가 논문에 소개된다. 간단하고 깔끔한 코드로 아주 적은 트래픽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 후 결과에 따라 트래픽을 점진적으로 늘린 다음 실험으로 넘어가는 것을 습관화 하길 추천한다.

7. 충분한 사용자를 확보한 후 실험에 임하라

통계의 매력은 작지만 의미있는 표본을 통해 전체 집단의 결과를 추정하는 것이다. 그로스 해킹 및 계량적인 마케팅 기법은 이런 의미있는 표본이 있을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사용자 수가 많지 않다면 실험을 더 오래 돌리거나, 제품에 더 큰 변화를 주는 이상적이지 못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 늦은 의사결정 또는/혹은 더 많은 위험 수반). 아니면 차라리 마케팅과 제품 개발의 본질로 돌아가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품 팔아 그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것이 낫다 (= do things that don’t scale). 다음 도표는 논문에서 제시한 적절한 표본 집단의 크기. 역시 유동성이 큰 매출 지표는 꽤 많은 사용자들을 표본집단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각종 지표와 권고되는 표본 집단의 크기 (이미지 논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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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아재의 한국 스타트업 방문기

얼마 전 업무 차 고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참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스타트업 및 벤처 투자자들을 만나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 대해 배우고, 또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 나온 후 십 수 년 동안 단 한 번도 한국과 관련해서 일해본 적도 없고 한국 스타트업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뉘앙스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또 나의 실리콘밸리 경험과 견주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낀 점들을 까먹기 전에 정리. (쉽게 각인될 수 있게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 하였지만, 실리콘밸리와 비교해서 정도의 차이라는 점을 인지 바람)

가장 다르게 느껴졌던 점 (= 아쉬웠던 점)

모두가 애널리스트이고 감독인 세상. 선수는 어디에?

스타트업 생태계 밖에 있는 사람들(대기업, 금융계, 공무원)은 물론,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 조차 ‘이래서 한국 스타트업은 안 돼’ 식의 비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을 생각보다 많이 만났다. 예를 들어, ‘내가 아이디어는 많은데, 개발자를 구할 수 없어서 스타트업을 못 해’, ‘스타트업은 투자 받기가 너무 어려워서 안 돼’, ‘한국서는 시장이 작아서 성공할 수가 없어’, ‘한국은 각종 규제 때문에 절 대 잘 될 수가 없어’, ‘머리 좋은 애들은 다 대기업 가는데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있겠어?’ 등. 이런 비판적인 사고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이런 문제점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분석하고 훈수(?)를 두면서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 및 문제의 대응에 대해선 불난 집 구경하듯 매우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실리콘밸리도 개발자 구하기 어렵고, 매출 100억이 넘어도 시장이 (TAM) 작다고 투자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며, 대부분의 ‘똑똑한’ 친구들은 테크 대기업이 싹 쓸어간다. (혁신과 스타트업의 진원에 있어 편향이 있겠지만)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이런 비판적인 사고와 더불어 이를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자세가 저변에 깔려있는데, 한국 스타트업 업계도 이런 면에서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규제 및 인증의 벽

말로만 듣던 규제 및 인증의 벽이 정말 ‘넘사벽’일 때가 있음을 실감. 핀테크 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한국서 핀테크를 하면 금융 전문가가 아닌 법률 전문가가 된다고 하소연을 하시더라는. 큰 규제를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겨우 넘으면 또 다른 부처에서 다른 규제로 태클이 들어오고, 해결하기 위해 관련 부처들의 입장을 조율하고 있으면 또 그 위에 계신 분(?)이 다른 이유로 불허하고… 약 10개월 정도 제품을 기획 및 개발하고 있는데 그 중 6개월 이상을 변호사랑 법 공부하고 담당 부처에 출입하면서 규제를 풀고 인증을 받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

개인적으로 규제는 혁신과 빠른 성장이 필요한 신사업 분야에는 최소한으로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방문 중 한국이 세계 두 번 째로 ICO를 금지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험한 투기 및 돈 세탁 등의 위험을 줄여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지만 이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 혁신과 유동성을 막아버리는, 득 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다. 미국 송금업체인 페이팔의 시가총액이 아멕스를 넘어 골드만삭스의 턱 및 까지 왔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페이팔도 1998년 창업 당시엔 보안, 사기, 돈 세탁 등의 위험이 넘처나는 금융계의 이단아였다. 페이팔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투자 받은 돈의 상당한 부분을 나쁜 사람들이 어떻게 보안망을 피해 금융 사기를 행하는지 관찰하는데 사용하였고 이때 얻은 인사이트를 통해 세계에서 손 꼽는 위험 분석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금융 거래에 대한 위험 요소 분석이 가능하게 된 페이팔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더 안전하고 편리한 송금 및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며 폭풍 성장, 지금의 거대 핀텐크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만약 페이팔이 창업 초반에 맞이 했던 문제점들을 규제로 통제하려 했다면 이런 멋진 알고리즘과 서비스가 과연 나왔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B2B의 부재

짧은 시간 동안 만난 회사의 모수가 작아서 일반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 스타트업에서 B2B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느꼈다. (한국 카메라 + 데이팅 앱의 수가 한국 전체 B2B 스타트업 보다 많은 듯?) 요즘 실리콘밸리의 B2B 스타트업 추세는 SaaS, Cloud, 그리고 ROI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으로 on-premise의 높은 비용 장벽을 없애고, SaaS의 사업 모델로 회사들이 필요할 때 서비스를 ‘구독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체 개발하는 것 보다 높은 투자 효율 (ROI) 및 노동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아직 한국 기업 전반에 와닿지 않는 것 같다. 교육 스타트업 하시는 분을 만나 기업 상대로 enterprise business를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라고 의견을 드리자 한국의 B2B 구매 과정에 대해 알려주시며 B2C를 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 하시더라. 실리콘밸리에서는 자주 겪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확실하게 마주하는 B2B 구매 과정의 어려움:

  • 왠만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다 막아두는 한국 기업의 엄청난 파이어월: 드랍박스, 구글, AWS를 막아두어서 이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는 아예 접속이 안된다는… ㅠㅠ
  • 노동 생산성 및 ROI: ‘왜 돈 주고 새로운 도구를 써야 되지? 그냥 사람 더 쓰면 안 돼? 야근 좀 더 하면 안 돼?’로 접근하는 사고 방식.
  • 의사 결정권자의 책임 회피 편향: 클라우드… 이거 보안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건데? 스타트업 서비스… 이거 쓰다가 당신네 망하면 어떻게 책임지라고? S사가 사용하면 우리도 쓸게.

희망적으로 느껴졌던 점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증가

작년 초 한국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O2O가 스타트업 트렌드로 회자 되곤 했다. O2O도 매력적인 면이 있지만 시장 확장성, 지속 가능성, 그리고 실제로 구축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규모를 빨리 키워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 반면 올해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이 약진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은 기술 자체가 커다란 진입 장벽으로 이용할 수 있고 현재 한국에만 서비스를 하고 있어도 상대적으로 쉽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업 확장이 가능하기에 매우 고무적인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CVC에서 전략 투자를 담당하시는 지인께서 이스라엘이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활성화 되어 있고 이에 투자 및 엑싯 성과도 꽤 좋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한국도 이런 트렌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살짝 기대가 된다.

정말 훌륭한 인적 자원

이번 한국 스타트업을 방문하면서 가장 감동한 것은 이들이 가진 훌륭한 인적 자원. 재능 넘치는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점점 늘어나고, 이들이 모여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제품이 조금씩 나온다는 사실이 위에서 제기한 ‘선수는 어디에?’라는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상 좁은’ 한국이라 업계 사람들끼리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같은 업계에 있다고 서로 친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좋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스타트업 업계에선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 학연/지연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배타적인 모임을 만들어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암튼, 개인적으로 이번에 만난 훌륭한 분들과 언젠가 같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 정도로 한국 스타트업 인재의 수준에 놀람. 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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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멋지게 발전할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나 기대되는, 그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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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it forward

http://margaretbourlon.com/gef-requirments/fun_new_culture_stuff/pay-it-forward/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있는데, 바로 ‘pay it forward’라고 하는 일종의 ‘선행 파도타기’ 정신이다. 흔히 재능 / 조언 / 멘토링 등을 나눌 때 사용하는데, pay it forward란 흔쾌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도움의 댓가를 되갚는 것이 아니라 (= pay it back)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이어서 선행을 베푸는 그런 행동을 일컽는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에 대한 적절한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 이 pay it forward 문화가 합리적이고 계산이 철저한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것이 신기하기만 한데, a16z의 공동 창업자인 Ben Horowitz가 pay it forward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왜 존재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혁신에 필수적인 요소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대부분 새로운 사람들이 새롭게 문제에 대해 접근하면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가진 것(자본, 인력, 네트워크 등)이 없습니다. Pay it forward는 이런 꿈이 있는 새로운 창업자들이 아무런 비용 없이 도움을 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문화가 있음으로 실리콘밸리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의 보고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Pay it forward의 대표적인 예로, 스티브 잡스가 아무것도 모를 이십 대 초반 빌 휴렛 (휴렛 패커드(hp)의 그 휴렛)과 밥 노이스 (페어차일드 공동 창업자 + 인텔 창업자)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때 당시 실리콘밸리의 거인이었던 이 둘은 무명인 괴짜 스티브 잡스를 흔쾌히 멘토링 해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크 주커버그도 페이스북 초창기에 빌 게이츠에게 조언을 구하였는데, 빌 게이츠 역시 관대하게 (generously) 주커버그를 도와줬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썰’ 같은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몇 년 전 NPS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하고 다른 회사는 NPS를 어떻게 적용하여 제품을 향상시키는지가 알고 싶었는데, 당시 NPS를 종교적으로 숭배했던(?) 슬랙의 CMO Bill Macaitis가 나의 의뢰를 흔쾌히 받아주어 슬랙 본사에 방문, 이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넘게 깊은 대담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도와주세요~’, ‘만나주세요~’ 해서 쉽게 댓가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예전 한 때 순진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심코 연락을 하고 당당히 연락을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no’는 커녕 dog무시 당하는 부끄러운 실수를 많이 범했다. 모든 문화에는 내재된 관습과 불문율이 있듯이, pay it forward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예절을 지켜야 함을 여러 경험(=실수)과 조언을 통해 깨닳게 되었다.

1. 소개 (warm introduction)로 연결을 시작

실리콘밸리에서 누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판을 매우 중요시 한다. 자뻑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가치와 맞지 않은 것에 연관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을 도와줬는데 만약 그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나중에 밝혀진다면 ‘guilty by association (연좌죄)’로 매장당할 수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어색한 ‘cold call’에 응답하기 보다 지인에게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 받는 ‘warm introduction’을 선호한다.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지인 소개로 한 단계씩 접근하는 것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양 보다 질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괜찮은 방법이다.

2. 진정성 (genuine) 있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

Pay if forward 정신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그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나 보다 더 큰 사람들이다. 이에 진정성 있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무엇이 고민이고, 여태까지 어떠한 시도와 노력을 하였고, 왜 이것이 나에게 중요하며, 어떠한 면에서 도움을 받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요청을 받는 쪽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몰랐던 나는 한 때 ‘can I pick your brain over a cup of coffee? (커피 한 잔 나누면서 이것 저것 물어봐도 될까요?)’ 라고 했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VC 및 실리콘밸리 리더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문구라고… ㅠㅠ

3. 감사 챙기기 (remember to give thanks!)

가장 실행하기 쉬운 동시에 가장 까먹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도움을 받은 후 간단하게 ‘감사해요!’ 한 마디 쓰는 것이다. Pay it forward 문화는 지식의 무상 거래 자체가 목적이 아닌, 지식의 거래를 계기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꼭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말고, ‘thank you’ 한 마디를 통해 관계를 더 깊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Pay it forward … 개인적으로 현재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그리고 실리콘밸리와 한국에 걸쳐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노력하여 더 확고하게 정착시켜야 할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Pay it forward 문화의 내재화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도와주는 문화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이로 인해 멋진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위대한 창업자, 제품, 회사들이 더 많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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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margaretbourlon.com/gef-requirments/fun_new_culture_stuff/pay-it-for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