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에 다니면 (정말 작은 스타트업을 제외하곤) 일년에 한 두 번 여지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직원 평가’ 기간이다. 워낙 날고 기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그들이 작성한 ‘본인 평가 (self assessment)’란을 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업적들을 본인들이 주도 했다고 열거해 놓았다. 아예 대놓고 본인 자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은 자기 홍보에 열중하여 개똥 만한 작은 일도 쇠똥 만한 업적으로 둔갑 시키는데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로 만든 쌀밥을 먹으며 겸손이 미덕이라고 평생 배운 한국인들에겐 이런 잘난 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여러 매니저들에게 본인의 업적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말고 당당하게 본인 홍보를 할 필요가 있다는 피드백을 수 년간 들었었다. 그런 피드백을 받고 꽤 오랫동안 혼자 전전긍긍 했었는데, 몇 년 전 커리어 코치의 도움으로 조금씩 탈 겸손(?)을 할 수 있었다.
코칭 세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리’ 대신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쓰라는 것. ‘우리 팀이 이런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가 아닌 ‘내가 이 프로젝트 일원으로 좋은 업적을 냈습니다’ 식으로 말이다. 한국인은 공동체 의식 및 집단 문화가 강해서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다. 우리 나라, 우리 회사, 우리 팀, 심지어 우리 와이프 (‘our wife’?! 응?!?!). 어색하더라도 ‘we’ 혹은 ‘our’ 대신 ‘I’ 라고 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동양권, 특히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지적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혼자 ‘하드캐리’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지만 중점적으로 담당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잘 정의해서 본인의 업적 및 역할을 부각시키면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쓰고도 자연스럽게 잘난 척을 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역할에 대해 정확히 하여 의도치 않은 확대 해석 및 오해를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다’와 ‘내가 이 프로젝트의 마케팅을 총 책임지는 사람이었다’는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가.
또 기억나는 유용한 팁으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사용하여 본인 홍보를 하면 저항감이 덜 하다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이 프로젝트 성공에 가장 큰 기여를 하였음’ 이라고 쓰는 것 보다 ‘내가 이 프로젝트 제안서의 초안을 작성하고 제품의 필수 기능 8개 중 6개를 담당 하였다’), 그리고 역겹지 않게 보이기 위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자랑거리를 평가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jerk test’ (내가 듣기에도 재수 없으면 남들도 재수 없게 받아들인다는 것) 등이 있다.
‘자기 자랑’ 혹은 ‘잘난 척 하기’라고 하면 아무래도 약간 재수 없게 들리는 것이 사실인데, 본질은 본인의 업적을 객관적인 틀 안에서 최대한 잘 포지셔닝을 하는 일이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일구어 낸 멋진 성과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 보다 적절한 잘난 척을 통해 나의 업적을 인정 받는 것이 백 배 낫다. 비록 잘난 척 하는 것이 DNA에 내재 되어있지 않은 우리 한국인이지만 얼굴에 철판 살짝 깔고 회사에서 잘난 척 좀 해야하지 않을까. 잘난 척 하는 기술… 좋던 싫던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에서 필요한 중요한 커리어 관리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