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링크드인 사업부는 평소보다 분주한 한달을 보낸다. 막판 실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 다녀서가 아니다. 12월엔 각 사업부에서 다음 해에 대한 전략을 짜고 사장단에게 보고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소위 ‘Annual Planning and Strategy Review’. 회사 사업에 관여하는 최고참들만 참여하는, 사장실에서 주최하는 회의 중 가장 중요하고 비중이 있는 모임이다. 이런 회의인지라, 사업부의 임원으로 몇 년 연속 참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긴장되긴 매한가지이다.
이번에는 새로 이사온 건물의 회의실에서 모였는데 내 옆에 앉은 동료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리드 호프먼! 그 옆에 제프 위너, 그리고 내 앞에 알랜 블루가 앉는다. 일인칭 Blitzscaling 수업이다! 그것도 매출 3조원이 넘는 실제 회사를 주제로!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종이 두 장에 빼곡히 자료를 정리하였고 달달 외웠었는데… 긴장감에 아무것도 생각이 안난다. 긴장을 풀기 위해 용기내어 알랜에게 한마디 건낸다: “스탠퍼드 강의 잘 봤습니다”.
회의가 시작된다. 역시나 이번에도 발표가 아닌 토론이다 (참고: 실리콘밸리 임원들이 회의 하는 법). 모두가 예상되는 질문으로 논의가 시작되지만 곧 논란이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건의한 내용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강한 질문 공세와 토론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된다. 정회 시간보다 한참 (= 몇 시간) 지나서야 회의가 끝이난다. 앞으로 다가올 회사 휴무기간이 그렇게 기다려 질수가…
강렬한 지적 노동으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난 정말 행운아구나. 별 실력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사람들과 옆에 앉아서 회사의 사활이 걸린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회사 휴무기간 동안 이 회의를 곱씹어 보면서 내가 가장 크게 ‘한 수’ 배웠다고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 회의한 내용 및 사업 세부 사항은 일절 제외한다).
전략이란?
우리는 전략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전략 컨설팅’, ‘전략 마케팅’ 등 무엇이든 좀 중요해 보이기 위해 붙이는 수사로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전략이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는 경우는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포터의 5 Forces 이론, 손자병법 등 다양하고 복잡한 비유가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 하지만 나에게 있어 전략의 정의는 매우 간단하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How do you win?)
이렇게 전략을 정의하면 회의의 목적이 더욱 분명해진다. 전략 회의 = 이기는 법을 구상하는 회의인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하나?
–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할 기반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가?
– 우리가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인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Big Dream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는 이런 회의를 통해 내년의 매출 목표 및 구체적인 사업 추진 계획을 심도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장기적으로 회사가 이루고 싶은 큰 비전에 대한 논의이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의 궁극적인 비전은 전 세계의 모든 노동 가능한 인력들이 경제적인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아직까지 어떠한 경과가 있었고, 또 앞으로 일년 동안 어떠한 활동으로 비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근시안적인 단기전략에만 집중하는 과오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의 동기 부여에도 일조할 수 있게 된다.
핵심(core)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큰 비전에 너무 치중하게 되면 정말 ‘꿈 같은’ 허황된 아이디어만 좇는 경우가 생긴다. 실리콘밸리 IT 산업에 몸담은 사람들 중 ‘the next big thing’이나 ‘the new shiny thing’에 심장이 안뛸 사람이 있기라도 할까?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회사의 핵심 사업들이 견고하고 확실하게 ‘이겼을 때’까지 더 멋지고 새로운 것에 한 눈을 팔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즉, 핵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제프에 의하면 ‘이기는 것’은 고객 가치를 더 깊게 전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
기업의 핵심 역량이나 사업이 흔들린다는 것은 기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에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cash cow’가 병들어 간다는 것이다. 고로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 회사의 총체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에버노트와 5%’ 대한 기사가 생각난다. 에버노트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에버노트의 기능들을 5% 밖에 활용을 못하고 있음에도 매우 만족을 하고 있다며 에버노트의 잠재력 대해 높게 평가하였고 회사 역시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방면으로 확장을 하였다. 하지만 유저들마다 각자 활용하는 5%의 기능들이 달랐기 때문에 에버노트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이다. 즉, 에버노트는 각 유저들에겐 좋은 경험을 제공하였지만 시장 전체를 봤을 때 제대로 정의된 ‘핵심’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고, 이에 unicorn에서 unicorpse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다시 전략의 정의로 돌아와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모두가 지적으로 동년배이다 (intellectual peers)
이는 내가 컨설팅 업계에 몸담고 있을 때 나의 스승이자 상사였던 분이 물려준 가장 큰 가르침인데, 최근 다시 한번 크게 공감이 되었다. 회의에 초대된 사람은 사장님(제프)을 흐뭇하게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라 회사의 성과를 최대로 이루기 위해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의견을 회의에 기여하라고 부른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직위을 불문하고 지적으로 동년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당당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 심지어 그것이 사장과 ‘논리 배틀’이 붙는 경우일지라도.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영원한 블랙리스트에 오를 줄 알았던 불안감은 기우로 끝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respect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맞고 틀림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 대신 다른 접근 방법이나 주장이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아무리 직위가 낮더라도 자신의 관점과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머리를 조아리고 조용히 있는 것 보다 몇 만 배 더 회의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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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배움은 끝이 없다더니, 이번 회의를 통해 Blitzscale 주역들의 내공을 느끼고 실리콘밸리의 일류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한 ‘클래스’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크게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부족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더 크게 꿈꾸고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