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 기자들과의 press brie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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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 중 일부가 회사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의 연장선으로 옆 팀 부사장님과 함께 테크 기자단을 상대로 press briefing을 열어 직접 회사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고, 또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을 대답하는 기회를 가졌다. 예전에 PR 자료를 서면으로 제출한 적이 있지만 실제 미국 테크 기자들과 엠바고를 걸어두고 대담을 나누는 경험은 처음! 나는 완전 생초짜인데 하필 상대방은 너무 후덜덜한 매체들 ㅠ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기사들이 좋게 나와서 감사감사 무한 감사 🙏! 또 언제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차후의 성공적인 press briefing을 위해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정리.

1. 짧고 임팩트 있는 소개

내가 이미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기자들은 내가 무슨 사람이고 어떤 역량에서 회사를 대표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럴 때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량으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 라고 짧게 소개를 하면 좋다. 이 때 본인이 어떠한 직군에 있는지 말하는 것 보다 자신의 업무가 풀고자 하는 문제나 목표에 연관시켜 소개를 하면 조금 더 자신을 임팩트 있게 포지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어느 팀에서 마케팅 해요, 제품 개발 해요” 등의 소개 보다는 “100억 명의 사용자의 보안을 항샹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가 더 강력하고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다.

2. Talking point를 미리 확실하게 정리

사실 회사에서 press briefing을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목적이 존재한다. 대략 경과 보고 (inform progress), 담론의 주도 (influence narrative), 혹은 신제품/기술/회사 홍보 (promotion)의 경우가 있는데 이런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화두를 정확히 정리해 두어야 기자들을 상대로 내가 (= 회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예전 링크드인 다녔을 때 Jeff Weiner CEO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우리 마케팅 팀을 엄청 쪼았던(?) 것 중 하나가 예상되는/원하는 신문 기사 헤드라인을 뽑아 오라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 없고 목적에 완벽히 부합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자료를 만들어 내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위를 일상적인 것들과 비유하는 talking point를 준비하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많은 경우 기사에 인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노 단위의 반도체 공정을 설명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정교하고 미세한 것인지 전달하기 어렵지만 ‘머리카락의 8만분의 1’이라고 이야기 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초미세 공정임을 누구나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보다 높은’, ‘달까지 왕복 가능한 거리’, ‘마른 날에 벼락 맞을 확률 보다 낮은’, ‘사람이 숫자를 센다면 수 천 년이 걸리는’ 등의 표현을 십분 활용한다면 talking point들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

3. Keep it real

너무 찬양 일색인 보도 자료는 기자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환영을 받기 힘들다. 사실 이런 성향은 대기업 보다 스타트업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그들의 말만 들으면 너무나 장미빛 미래만 이야기하여 그 회사/제품의 신뢰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진한 점을 강조하지는 않더라도 상황에 맞게 인정을 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갈 계획을 공유하고 제시하는 것이 기자들에게 균형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4. 예상되는 질문들, 특히 피하고자 하는 곤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미리 준비

100이면 110, 내가 꼭 피하고자 하는 질문은 누군가가 던지게 되어있다. 어려운 질문 피했다고 좋아하고 있으면 나중에 서면으로 추가 질의에 포함되어 있다 ㅠㅠ.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누구처럼 눈에서 레이저 쏘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 놓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에서 나왔던 겸손과 인정의 미덕을 보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2에서 준비한 화두로 되돌아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들 중심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대화의 흐름 바꾸는 것은 왠만한 사람이 임기응변으로 하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꼭 미리 준비하여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5. 연습, 연습, 그리고 또 연습

Press briefing에서 내가 준비한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은 반도 안되고 (미리 자료를 공유했을 경우는 더더욱), 대신 대부분의 시간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데 할애한다. 이런 자유로운 포맷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실수를 할 위험이 있다. 특히 경쟁사와의 비교나 기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답변을 해야하며, 공개할 의도가 없는 기밀사항들이 실언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초반에 몇 번 ‘허걱, 잘못하면 이거 말할 뻔했네!’ 하며 뜨끔 한 적이 있다. 기자들에게는 특종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런 실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많은 멘탈 훈련과 연습은 필수이다.

막상 쓰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들만 나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것 보다 더 훌륭한 전략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정리 끝.

Special Bonus: 어느 실리콘밸리의 내공있는 기자님께서 전해주시는 press briefing tip!!

1.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설명 하다 보면 필요 이상의 말, 빈 말, 심지어는 기자와 다투는 일도 벌어진다. 이건 최악의 상황이다. 불필요한 말을 하기보단 말을 안하는게 좋다

2. “나는 그 이슈에 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민감한 질문이 나올때 VP 이상 심지어 CEO 조차도 이런 말을 하더라. 마크 저커버그도 “나는 그 질문에 설명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도 들은 적 있다. 마크가 아니라면 페북에서 누가 이슈를 설명한단 말인가.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방어할 때 이보다 좋은 레토릭은 없다고 생각했다.

3. 내가 얘기한대로 기사화된다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자들은 프레스컨퍼런스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fact에 기반해서 쓰지만)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해석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왜곡이 아니라 해설이며 최근 독자들은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해설하는 기사를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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