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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CEO의 격

요새 한국 사람으로 부끄럽고, 또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 부끄러운 나날이다. 하필 또 지금 영국에 나와 있는데, 2016년 최대 f-up 1, 2, 3위를 한번에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 어이가 없다.

화요일 치뤄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당선되자 힐러리는 깔끔하게 결과를 수용하고, 오바마 역시 트럼프를 축하하며 국민들에게 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의 많은 곳에서는 트럼프의 ‘공포’에 두려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이민자 및 외국인 전문 인력이 많고, 업계 특성상 진보의 성향이 매우 강한 실리콘밸리의 IT 회사들에서는 ‘멘붕’이 왔다. 나의 페이스북 피드엔 좌절, 두려움, 그리고 미국 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한 포스팅으로 가득했으며, 이런 감정은 각자의 회사들에서도 드러났다.

뒤숭숭한 아침이 지나고, 오후 느즈막히 미디어에서 실리콘밸리 CEO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선 결과에 대해 쓴 이메일들이 속속 공개가 되기 시작하였다. 아래는 링크드인의 제프 위너가 공개한 직원들에게의 편지:

여러분,

저는 어제 링크드인의 많은 임직원들과 최근 대선 결과가 우리 개인, 그리고 회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어제 들은 이야기 및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에 대해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길고 험한 선거 과정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선거 결과를 지켜 보면서 쇼크, 슬픔, 그리고 애도에 걸친 깊은 감정들을 표출하였습니다. 반면 어느 동료들은 승리를 축하하였고 , 또 어떤 사람들은 무감정으로 결과를 받아 드렸습니다. 매우 자질이 충분한 여성이 낙선하는 것을 보고 실망의 눈물을 흘리는 여성분도 있었고, H1-B 비자를 통해 저희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매우 뛰어난 직원은 미국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을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에 떠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중략>

우리는 수 년 동안 ‘전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비전을 실현시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때, 더 이상 자신들의 의견이 들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회는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역량 부족, 사회 계층간의 양극화, 기술의 발전으로 없어지는 일자리,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미국에서 더 이상 자신들이 성공하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링크드인은 이런 사회에서 정말 의미있는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들고 있는 ‘이코노믹 그래프’, 그리고 최근에 출시한 링크드인 온라인 강의 플랫폼 및 취업 서비스 등은 전문직 종사자 뿐만 아니라 기간이 흔들리고 있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중략>

저는 트럼프 정부가 우리 나라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브렉싯과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배운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예상 가능한 결과가 더 이상 예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개인으로써, 그리고 링크드인의 일원으로 가진 변하지 않는 가치관입니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 인종, 종교, 성별, 출신 국가와 관계 없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연민의 감정으로 서로를 도와주는, 그런 마음과 행동을 계속해서 갖도록 하겠습니다. 회사와 함께하는 여러분들도 그러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느 선거 결과도 우리의 이런 모습을 바꿔서는 안됩니다.

-제프

(원문 링크)

애플, 이베이 등 다른 회사들의 CEO가 보낸 이메일도 읽었는데, 공통된 흐름이 있음을 느꼈다:

“직원 여러분, 나는 선거 결과에 다양함 감정이 섞여 있음을 알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다양한 감정을 수용하고 존중할 줄 아는 멋진 조직임을 기억하세요. 이러한 태도가 우리들이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할 수 있는 ‘비밀 소스’ 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돌보며, 우리의 가치를 지켜가며, 우리의 진북을 위해 나아갈 것이에요. 파이팅.”

혹자는 직원들의 감정적 동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쓰여진 ‘경영 수단’이라고 치부해 버릴수도 있겠지만, 이메일을 읽어보면 그런 목적을 초월하여 회사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 담당해야 할 역할, 그리고 앞으로 나아 가야할 비전을 현 시국 상황에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회사에서 돈의 논리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지난 1월 링크드인의 분기 실적이 기대치보다 약간 낮았다고 주가가 하루만에 50% 폭락하는, 그런 미국이다. 이런 사회에서 사업 실적과 관계없는, 지금의 시국이 ‘회사 공동체’에 의미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 CEO의 ‘격’이 너무 멋지고, 또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 문화가 정말 존경스럽다.

대한민국도 지금 시국이 좋지 않다. 나라가 점점 세대별, 계층별, 지역별로 균열되고 있고 최근 일련의 사태도 국민과 국민의 대표와의 균열도 사상 최악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한 축을 (본의든 아니든) 책임지고 있는 한국 IT 업체들의 리더들에게도 이런 격을 느끼는 날이 오길 바란다.

Published in 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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