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적임자’가 없어서 진행이 안될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하는데 어느 한 특정 인물의 의견 혹은 승인이 없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어느 회사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높으신 분’ 이지만, 적지 않은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들은 직위의 높고 낮음과 관계 없이 해당 분야의 인정 받는 전문가가 그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어느 문제나 사안이 있을 때 모두가 ‘구해줘요~’를 외치며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go to guy’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가장 비슷한 느낌이 나는 번역으로는 ‘해결사’ 정도가 되겠다.)
나는 누가 나에게 커리어 조언을 구할 때 이런 ‘go to guy’가 되라고 권한다. 그 이유는 본인의 직위와 관계 없이 조직 내의 영향력, 평판, 그리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지표이기 때문이다. 얕은 넓은 지식 보다 적당하게 넓게 알고 몇 분야를 정말 깊게 잘 아는 전문가가 대접받는 시대가 왔기에, 이런 ‘go to guy’가 됨은 좋은 궤적의 커리어를 그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Go to guy’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깊은 전문성과 관련 업무 능력이 출중해야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회사 조직이 그를 전적으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도록 신뢰감을 발산해야 하고, 또 한 두 번이 아닌 지속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여럿 이겠지만 십 수 년 간 실리콘밸리의 여러 회사에서 ‘go to guy’로 인정받는 분들을 만나보며 느낀 공통된 두 가지가 있었는데 긍정적인 자신감, 그리고 유연한 사고의 틀이다.
우선 ‘go to guy’는 긍정적인 자신감이 남다르다 (= exude positive confidence). 긍정적인 자신감은 문제의 해결 유무를 떠나서 해당 문제를 접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접근하는 태도이다. 우버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리닉이 자주 하던 말이 이런 ‘긍정적인 자신감’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나는 (우버 처럼)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좋다. 해결을 하던 안 하던,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가 싫다는 창업자는 마치 수학과 교수가 어려운 수학 문제가 싫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트래비스 칼리닉 (우버 창업자)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는 문제를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제 해결보다 문제 회피에 급급하다. 이런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실력이 조금 있다고 남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해주는 거만한 태도 역시 ‘go to guy’에서 찾아볼 수 없다.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에게 ‘go’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긍정적인 자신감과 더불어 ‘go to guy’는 기존 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유연한 사고의 틀을 가지고 문제를 접근한다. ‘Go to guy’, 즉 ‘해결사’는 말 그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지 기존의 해법 공식에 현재의 문제를 단순 대입하여 답을 짜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기존의 틀이 현재 상황에 맞지 않으면 새로운 틀을 짜고 다르게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의 관습이나 대세에 역행하더라도 (심지어 때로는 ‘선을 넘더라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방법과 새로운 관점으로 실마리를 풀어낸다.
십 수 년 전 꼬맹이 컨설턴트 시절 내 업무 중 하나는 고객이 처한 문제를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접근했는지 벤치마킹 사례를 찾아 고객사에게 자문을 해주는 것이었다. 고객사들이 가진 아이디어가 내가 찾은 벤치마킹 사례에 있는 경우 ‘다른 회사에서 이미 적용 했는데 성공했어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이것을 시도한 사례가 있었는데 실패했으니 저희도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식으로 의견을 내곤 했다. 이런 의견을 들은 고객 측 ‘go to guy’는 ‘다른 회사들은 안 되었지만 지금은 저희 측 상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될 것 같아요’, ‘남들은 모두 다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측이 직접 검증한 데이터와 논리로 봤을 때 이렇게 새롭게 접근하면 될 것 같아요’ 등의 더 깊은 사고와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틀에 갇힌 나의 빈약한 논리를 보기 좋게 깨뜨리고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곤 했다.
글 초반에 언급했듯이 어느 조직에서 ‘go to guy’가 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조직의 핵심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전문성 및 문제 해결 능력을 인정 받았다는 것이고,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본인의 의견과 실력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 같이 성과주의가 자리잡은 문화에서는 성과가 계속해서 쌓이면 그것이 개인의 평판이 되고, 좋은 평판은 커리어 성장의 큰 디딤돌이 된다. 열심히 성과를 내어 드디어 한 분야의 ‘go to guy’라는 평판이 생겼다면 본인이 원하는 전략과 비전을 더 권위있게 주장할 수 있어 커리어 성장의 선순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고, 전문성이 달리는 다른 분야로 이직/이동을 꾀할 때는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는 ‘해결사’의 포지셔닝으로 본인을 어필할 수 있다.
깊은 전문성, 관련 업무 능력, 긍정적인 자신감, 그리고 유연한 사고 방식을 통한 지속적인 문제 해결… 이런 실력들을 겸비하여 본인이 담당한 분야의 ‘go to guy’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