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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사태로 다시 생각해본 스타트업 정신

뉴욕타임즈 기사:
뉴욕타임즈 기사: ‘테라노스 검사 결과가 불규칙하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테라노스의 혈액 검사가 기존 업체보다 더 불규칙한 결과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사가 났다. 몇 달 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번엔 뉴욕타임즈가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독립 의료기관이 각각의 혈액 검사를 비교 분석한 결과 테라노스는 많은 분야에서 기존 업체와 같은 결과를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분석을 할 수 있었지만 백혈구, 헤모글로빈, 그리고 특정 콜레스테롤에 관련된 검사에서는 기존 업체보다 더 불규칙한 결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기존 업체들의 에러율은 7.5~8.3% 였는데 테라노스는 50% 가까이 높은 12.2%).

이 기사를 계기로 테라노스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예전 블로그 글에서 내가 응원을 보냈던 엘리자베스 홈즈라서 이 소식은 매우 안타깝다. 스탠퍼드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수재이자, 실리콘밸리의 인재들과 같이 회사를 끌어나간 그녀와 테라노스는 왜 이 지경에 오게 되었을까? (참고: 테라노스 연구 직원들은 링크드인 계정에 정보를 올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인력의 ‘질’은 평가할 수 없었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어느 한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나는 실리콘밸리의 전형적인 스타트업 정신이 본의 아니게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실리콘밸리의 ‘전형적인 스타트업 정신’?

실리콘밸리의 ‘전형적인’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를까? 이미 상장이 되었지만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이나 최근 잘 나가는 O2O 회사들 (우버,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등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참고: 애플은 오래되어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 느낌이 안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래됨과 동시에 시애틀에 본사가 있어 바로 떠오르거나 회자되는 회사가 아니다.) 이들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하는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속도’ 이다.

‘Move fast and break things’ – Mark Zuckerberg

‘If you’re not embarrassed by the first version of your product, you’ve launched too late’ – Reid Hoffman

‘Move fast. Speed is one of your main advantages over large companies’ – Sam Altman

나도 실리콘밸리의 IT 회사를 다니기에 속도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시장에 제품을 내놓아 고객의 니즈와 반응을 재빨리 살피고, 그것을 토대로 제품에 알맞은 변화를 준 후 ‘first-to-scale (시장 선장악)’을 해야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즉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정신은 제품을 시장에 빨리 출시하고 (=속도), 반복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버그 및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켜 재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또 속도).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접근 방법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닌 경우 매우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프트웨어 제품에 사용자 경험의 제약이나 각종 버그들을 큰 부담 없이 받아드리는 성향이 있다. 몇 주 후에 버그가 업데이트를 통해 고쳐지겠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설령 버그가 있더라도 실제 삶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스타트업들은 제품의 초기 품질과 속도의 트레이드오프에서 시장에 도달하는 속도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 사진이 옆으로 돌려서 올려진다면 매우 짜증나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누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하드웨어 + 의료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의용생체공학 관련 제품과 서비스들은 사용자들이 ‘버그’를 받아드릴 의향이 매우 낮다. 만약 심장수술을 하는데 의사가 ‘아 이번에 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수술을 해보고 잘 안되면 다음 환자에게 더 좋은 방법을 써봐야지’라고 한다면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얼리 어답터’ 환자가 있을까? 아무리 속도가 중요해도 이쪽 분야에서는 초기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왠만한 ‘버그’는 제품의 출시를 저지하는 ‘blocker’ 급으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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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는 자신들의 제품을 버그를 고치면서 개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취급하고, 성장의 속도에만 너무 노력을 치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고, 속도와는 별개로 업계별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피어리뷰를 통한 신뢰성 확보 등은 생명을 다루는 의학계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데, 테라노스는 절대적으로 빨리 움직여야 된다는 강박에 이런 것들을 놓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만약 테라노스가 자신들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아직 임상에 적용하기는 부족할 것 같다고 ‘쿨하게’ 인정했다면 오히려 더 많은 혁신과 투자가 이루어 졌을 것 같은데,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수습 불가인 상태여서 너무 안타깝다.

테라노스 사태를 통해 스타트업들은 절대적인 속도과 성장을 더 이상 유일한 ‘종교’로 삼지 말고, 사용자들의 가치 창출과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는 것에 집중하고, 그 틀 안에서 혁신의 속도를 점진적으로 늘려 나가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하드웨어와 생명과학 업체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더 알맞는 ‘스타트업 정신’이 아닐까.

 

PS – 테라노스 부록 편

테라노스 뉴스를 지켜보면서 왜 투자자나 이사회에서 회사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별첨한다.

투자자

테라노스는 총 $87M을 투자 받았는데 DFJ와 Tako Ventures가 주 투자자로 나와있다 (자료: Mattermark). 유명한 투자자들 이지만, 이들은 생명과학 분야 투자에 대한 특출한 역량이 있거나 생명과학 스타트업에 효과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DFJ (Draper Fisher Jurvetson) 스탠퍼드 동문인 Steve Jurvetson이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의 명문 VC. 핫메일(Hotmail)에 투자하여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역대급인 $400M로 M&A 시킨 경험이 있음. 박스, 스카이프, 트위터 등 인터넷 회사 위주로 대박을 터트린 경험은 있지만 생명과학 분야는 거의 전무하다. (athenahealth 라는 의사용 백오피스 소프트웨어가 가장 근접)
Tako Ventures 생명과학 및 제약회사에 투자를 하는 회사인데, 오라클 회장인 Larry Ellison의 투자 펀드로 역시 소프트웨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나 짐작된다. (물론, 내가 틀릴 수 있음).

이사진 (Board of Directors) 및 고문 (Counselors)

과연 테라노스 이사진 만큼 화려한 회사를 찾을 수 있을까. 엥? 그런데 의료 관련 이사진은 단 두명. 거의 모두 정부 규제 및 관련 입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인과 군 관료 위주로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다. 의사 및 의학 전문가들이 이사진에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Sunny Balwani 스탠퍼드 컴공 중퇴. 소프트웨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Riley Bechtel 미국에서 가장 큰 토목회사인 Bechtel 그룹의 회장
David Boies Boies, Schiller & Flexner 법무법인의 회장.
William Foege 前 미국 CDC (질병관리국) 임원.
William Frist 의사출신 정치인. 12년 동안 테네시 주 상원의원을 지냄.
Henry Kissinger 역사책에 나오는 그 분;;
Richard Kovacevich 前 Wells Fargo 은행 CEO.
James Mattis 前 미 해병대 및 나토 연합군 장군.
Sam Nunn 24년 동안 조지아 주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인.
William Perry 前 미 국방장관.
Gary Roughhead 前 미 해군 제독이자 스탠퍼드 후버 연구소 펠로우.
George Shultz 닉슨 및 레이건 재임시 노동부 장관, 재정부 장관, 미국 ‘산자부’ 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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