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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관리의 예술 (The Art of Product Management)

테크 회사의 제품 담당자 인터뷰를 준비하는 분들이 가끔 조언을 얻고자 지인을 통해 내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의 모든 분들이 가장 두렵고 알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코딩 할 줄 알아야 되나요?’의 질문에 대한 답변. 이 질문을 조금 일반화 시키면 제품 담당자가 되기 위해 기술적인 역량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코딩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은 여기에) 일단 제품 담당자라고 하는 직군은 논리적 사고와 계량적인 방법론들을 이용하여 사용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정의하고 성공을 위해 팀을 이끌어 나가는 집단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하곤 한다.

이에 제품 담당자가 갖추어야 할 계량적이고 기술적인 소양에 대해서 최근 십여년 간 많은 블로그와 서적을 통해 기술되었고, 이렇게 생성된 정보들이 제품 담당자들 사이에, 그리고 제품 담당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로스해킹과 A/B 실험의계량적인방법론들, 기존의 소프트웨어 개발 주기의 폭포(waterfall) 모델에서 상황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agile) 기법의 정수로 알려진 스프린트(sprint) 모델 등, 간단한 구글 검색 혹은 아마존 서적 검색을 하면 자세한 정보를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이런 기법들을 집대성하여 제품 담당자 취업대비서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런 책들과 블로그를 읽다 보면 A/B 실험에 대한 직관력을 키워서 좋은 성과를 달성하고 스프린트 기법을 통해 제품을 빨리 출시하고 개선하는 법을 통달하면 훌륭한 제품 담당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제품 담당자의 커리어를 걷다보니 훌륭한 제품 담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품 관리의 예술적인 (= the art of product management) 부분이 위의 계량적인 방법론을 숙달하는 것 못지 않게, 혹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제품 관리의 예술적인 부분? 제품 관리의 예술적인 부분이란 계량화나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운, 제품의 심미적인 그리고 가치관에 관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 이런 것을 판단하기엔 계량적인 접근 방법이 어렵거나 맞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 특히 가치와 윤리에 관련된 제품 결정을 해야할 때는 더더욱.

예를 들어 어느 화상채팅 앱을 특정 사용자들이 섹스팅 앱으로 사용하고, 그들의 인앱 매출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 해당 제품 관리자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까? 플랫폼 자체는 중립성을 가지고 있고 그 플랫폼을 이용하여 나쁜 행위를 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더 나아가, 성인 사이의 동의하에(consent) 이루어진 일이라면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고 까지 할 수 있다. 상황을 조금 더 엮어보자. 만약 해당 집단에서의 인앱 매출을 포기했을 때 회사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이 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담당자로써 내 제품을 통해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내 양심에 ok 인가? 또 내 제품의 비전과 일치하는가?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또 다른 예로,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 플랫폼에서 혐오 단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 커뮤니티를 이용해 어느 특정 집단을 비하, 모욕, 공격을 한다면, 그 커뮤니티 사이트 제품 담당자는 어떠한 판단을 해야할까? 마찬가지로 플랫폼의 중립성이라는 논리는 이용하여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제제를 가할 것인가? 제제를 가하면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이 아닌가? 어느 것이 옳은 결정인가?

위 두 예 모두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윤리관과 제품 담당자의 성공 지표(매출, 사이트 접속/사용량 등)가 대립하고 있는 경우이다. 제품의 성공 지표들을 기준으로 A/B 실험을 진행한다면 섹스팅 앱과 혐오 단체 커뮤니티를 유지시켜야 하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너무 당연한 결정을 어렵게 포장 했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실제 상황들은 더 복잡하게 얽히고 뉘앙스가 가득하여 이런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이 여의치가 않을 때가 너무나 많다.

나 역시 제품 담당자로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들은 이런 가치관과 윤리가 엮인 제품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였는데, 이런 고난(?)을 극복하는데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은 마이클 샌달 교수의 ‘정의란무엇인가’ 강의를 다시 듣는 것이었다. 강의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이야기나 나오는데 ‘greate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의 사고 방식이 현재 테크회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 저변에 깔려있는 가치라고 생각된다. A가 B 집단 보다 10% 결과가 좋으면 A 방식을 택하였을 때 피해가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전체로 봤을 때 A집단의 효용이 높기 때문에 A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그로스 해킹의 기본 접근 방식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진부하지만 너무 명쾌한 공리주의에 대한 반론 ‘그렇다면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먹이감이 된 몇 명의 그리스도 인의 죽음은 몇 만 명의 로마인들의 즐거움을 위해 정당화 할 수 있는가?’ 역시 위 두 예의 딜레마와 일맥상통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이런 윤리적/가치관적인 문제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위 예에서 나온 고민들도 어떻게 결정을 내리던 옳은 결정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단, 어느 확고한 가치관과 논리를 기반으로 어느 제품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고, 동시에 그런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올 수 있는 한계점들에 대해 고민과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제품 관리의 예술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깊은 생각을 하고 데이터가 답해 줄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신의 한 수’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품 담당자들이 정말 고수인 것이다.

결론: Product management is as much of an art as it is a science.

공리주의의 아버지 제레미 벤담 형님과 함께 (실제유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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