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 제품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말을 너무 안듣고, 본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엔지니어들을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 한다는 불평으로 끝이 나곤 한다. (물론, 엔지니어들은 답답하고 무능한 제품 담당자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다고 불평을 할 것이다).
이런 고충이 있는 이유는 제품을 책임지고 있는 제품 담당자가 제품에 기여를 하는 팀원들에 대한 인사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테크 회사들은 직군 별로 조직이 나뉘어져 있고, 다양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제품을 중심으로 모이는 XFN (= cross-functional) 구조로 팀이 조직되다 보니 팀 내 본인 상관이 아닌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골치 아픈 버그를 몇 개 잡아 달라고 제품 담당자가 어느 엔지니어에게 고쳐달라고 하면, 엔지니어는 해당 버그를 잡기 위해 개고생 해야할 것이 눈에 선한데 다음 인사 평가때 멋진 업적을 써서 낼 수 없을 것 같아 (= ‘불과 버그 몇 개 잡았음’) 각종 핑계를 대면서 제품 담당자가 부탁한 일을 미루거나 빠져나가려고 한다.
제품 담당자 직군을 mini-CEO 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위의 상황처럼 제품 담당자가 팀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제품 담당자는 nano-CEO는 커녕, 권위는 하나도 없고 책임은 무한대로 지는 욕받이 역할만 하게 된다. 😭 급하게는 욕받이를 면하고, 궁극적으로는 제품 담당자의 원래 역할인 제품에 큰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제품 담당자는 인사권이 없이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법을 필수적으로 체득해야 한다 (= ‘lead by influence’).
영향력으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 무엇 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야 한다. 제품 담당자가 의사소통 능력이 좋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잘 전달한다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나의 주장을 상대방이 수용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즉, 설득력이 높아야 한다는 것. 남을 설득 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설명하고, 부연 설명하고… 등등) 한국인 MBA / PM 지망생들이 흔히 ‘PM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은 이 블로그 글 참고), 영어 자체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 정연하게 나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강약 밀당을 조절할 수 있는 active listening 실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사소통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들과 기법들이 물론 여럿 있지만 (예: The Pyramid Principle), 결국엔 많은 연습과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해 관계자들과 1:1을 자주 하는 것 역시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1 미팅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상대방의 숨은 동기 및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까 예로 든 버그 따위(?)는 고치기 싫은 엔지니어가 인사 평가에 도움이 되는 ‘executive visibility (임원들의 주목)’를 굉장히 원한다는 것을 제품 담당자가 1:1을 통해 알아낸다면 이 정보를 이용하여 ‘사용자 경험 개선 경과 보고’ 임원 미팅에 엔지니어를 초대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Skip level 1:1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두 번 째 방법이다. Skip level 1:1 이란 내 보스의 보스, 혹은 내 이해관계자의 보스와의 1:1 미팅을 지칭한다 (= 나랑 직접 연결된 사람을 ’skip’하고 그 윗 사람을 만난다는 뜻). Skip level 들에게 나의 주장에 대한 피드백과 동의를 받은 후 이해 관계자들과의 1:1에서 ‘너네 보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거 같어’ 라고 말을 하면 내 주장이 조금 더 무게감 있게 전달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이해 관계자들들의 권위가 무시 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선을 잘 조절하는 것. 마지막 방법은 1:1 미팅을 통해 이해 관계자들 한 명 씩 설득하여 서서히 ‘대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 명이 설득되면 ‘저 옆에 누구도 여기에 동의해’라고 말하여 그 다음 사람을 설득하고, 이 작업을 반복하여 모두가 대세에 참여를 하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 버리면 가랑비에 옷 젖듯 조직이 이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문서화 하여 적시에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서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두면, 우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조금 더 정제되는 효과도 있을 뿐더러, 발표 자리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조직 내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고, 또한 아이디어가 ‘공식화’ 되었다는 느낌도 조직 전반에 줄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중구난방할 때 ‘이렇게 생각해 둔 문서가 있는데 참고 하시죠’ 라고 한다면 의견의 교통 정리를 나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단 문서화된 아이디어는 개개인의 ‘발표 전달력’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설득력을 가져야 하므로 주장, 논거, 데이터/수치 등이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정돈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엔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 수 있기에, 문서 작성 시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함)
모든 ’soft skill’이 그렇지만 위의 방법들이 성공 공식은 전혀 아니며, 개인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조직을 효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다면 제품 담당자는 비로서 mini-CEO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 동료 제품 담당자 분들… mini-CEO 함 가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