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테크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유난히 베끼기와 가짜에 관련한 뉴스들이 많은 한 해 였다. 가짜 뉴스, 스타트업끼리, 또 정부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베끼기 논란 등. 개인적으로도 직/간접적으로 이와 관련된 문제를 겪었는데 이를 통해 베끼기와 가짜 논란의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또한 조금 흥미로운(?) 소비자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의 생각을 정리.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IANAL’ (I am not a lawyer – 나는 변호사가 아닙니다)라는 단서와 함께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둔 것라는 점을 명시해 둠.*
베끼기와 가짜의 문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의 MECE 하지 않는 이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지적재산권 침해, 가장(impersonation)으로 속는 소비자, 그리고 상도/상생의 가치관 부재.
지적재산권 침해 => 베끼기
지적재산권 침해는 남이 가지고 있는 상표권이나 지적재산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 홍보물에 뽀로로 캐릭터를 사용하는 경우. 많은 경우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순진(?)하게 법을 범하게 되는 것이지만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남의 지적재산의 도용을 통하여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가 유명한 브랜드와 연관되어 있거나 그들이 보증하는 것 처럼 보이게 한다. 더 심한 경우엔 원천 기술을 그대로 베껴 지적재산의 원 보유자가 가진 경쟁 우위를 무마시키는 사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지적재산권 침해는 법적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절차가 매우 길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에 (예: 삼성 vs 애플 특허 분쟁) 본질에만 집중하고 빨리 움직여야 하는 스타트업 같은 경우는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에 엮이는 것 자체가 골치 덩어리이다.
가장(impersonation)으로 속는 소비자 => 가짜
가짜를 진짜처럼 가장하여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순진한 실수가 있을 수 없다. 가짜를 진짜처럼 가장하여 판매하는 자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소비자를 속이는 것, 혹은 소비자를 통해 더 많은 대중을 속이는 것. 이 때문에 가장(impersonation)이 가짜/베끼기의 문제 중 가장 비열하고 악질적이다.
그런데 이런 가짜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가 참 재미있다. 명품 브랜드의 경우 소위 ‘A급 짝퉁’이라고 암암리에 알려주고 판매할 경우엔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오히려 진짜에 더 가까운 가짜일수록 그 실력을 인정해 주면서 구입하려고 한다.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척 함으로써 남에게 보여지는 (허위) 경제력 및 품위는 가지고 싶으나 실제로 그런 것을 이룰 수 없는 괴리감을 탈출하려는 시도인지, 쓸데 없이 ‘비싸기만 한’ 제품에 대한 반감인지 모르겠다. 동시에 가짜 휘발유, 가짜 자동차 부속 등 사치와 심미적인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같은 소비자들이 정 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소비자의 태도가 어찌하던 진짜로 가장한 가짜는 창조자(original creator)에게 너무나 치명적이다. 알고도 가짜를 사는 소비자층이 형성되면 기술과 디자인을 선도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 수고의 보상이 사라져 창조자들은 큰 경제적인 피해를 입는다. 감쪽같이 소비자들을 속여 가짜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소비자들은 사기를 당한 셈이 되고, 창조자에겐 매출 피해는 물론, 가짜 제품의 낮은 사용자 경험이 창조자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끼치는 lose-lose 상황이 형성된다.
스타트업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가짜가 흔하게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 단, 피싱 (phishing) 및 악성 소프트웨어들이 진짜로 가장하여 소비자를 위험할 위험이 있으니 항상 주의해야 한다.
상도/상생의 가치관 부재 => 베끼기 & 가짜
어느 선을 넘어야 가짜이고 베끼기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해서 나훈아와 너훈아가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르의 유사성, 포맷의 벤치마킹 등으로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몇 초 후 사라지는 비디오 메시지라는 재미있는 포맷을 통해 미국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스냅챗. 올 해 초 페이스북의 대항마로 주목받아 화려하게 주식시장에 데뷔하였다. 그것을 본 페이스북은 보란듯이 인스타그램에 스냅챗의 핵심 기능들을 그대로 베껴서 구현, 10억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추가로 스냅챗을 사용할 이유를 없애버렸다. 케빈 시스트롬은 뻔뻔하게(?) 이런 새로운 메시징 포맷을 선구한 스냅챗이 멋지다는 멘트까지 날리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 달 만에 인스타그램 내에서 스냅챗 유사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DAU/MAU) 스냅챗을 월등히 능가하게 되었다. 언론들은 Snapchat copycat (“가짜 스냅챗”) 이라는 수식어를 쓰면서 대기업이 작은 회사를 고사시킨다고 비난했지만, 위의 지표에서 보듯이 사용자들은 굳이 마다하지 않는 듯 한 사용 패턴을 보였고 주가는 이를 반영하였다.
한국에서는 구닥 – 스냅킥, 라마마 – 타로냥 등의 업체들이 위와 비슷한 논란들이 있었는데, 이 논란들은 모두 포맷을 참고한 (혹은 서비스를 홀딱 베낀) 측의 사과와 서비스 중단으로 마무리 되었다. 포맷을 참고 했다고 굳게 믿는다면 인스타그램 처럼 욕을 먹더라도 묵묵히 뚫고 나가지 못해서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고, 정말 악의적으로 잘 나가는 (나갈 것 같은) 서비스를 표절 하였다면 한국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자정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 진실이 어떠하던 결론적으로 이런 베끼기와 가짜의 경계선에 있는 상황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포맷 인용자’들의 상도 및 상생의 가치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 물론 가치관 자체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일정 부분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시장 기회가 보이고 경쟁자가 하던 것을 베끼던 포맷을 참고하던 법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겠다’라는 사고 방식이 컸던 것 같다. 개발사들은 자신들이 악의적인 의도가 없고 상도와 상생의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포맷을 참고하는 데 있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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