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Dollar Shave Club이라는 면도기 전자상거래 회사가 유니레버에 10억달러에 매각되었다. 테크 기반의 회사가 아닌 생필품 전자상거래 유통 회사인 것이 눈에 띈다. 이 회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지만, 정말 엄청난 ‘허슬’ (hustle: 파이팅)로 일구어낸 쾌거라고 생각된다. 그 어느 면을 봐도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사업으로, 그리고 투자처로 매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 제품의 차별성: 면도기에 얼마나 큰 차별을 둘 수 있을까? 3겹 날, 5겹 날 정도? 면도기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 기술적 우위: 면도기에서 ‘기술’이란 면도날의 품질, 면도날 개수, 턱선에 잘 감기는 면도기 축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질레트가 이 부분에서 최고.
- 시장의 특성: 차별성이 낮은 생활용품 시장은 마진이 낮은 편이다 (영어로 우연찮게도 ‘razor-thin’이라고 표현). 대량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있을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와 비교해서 레버리지가 현저하게 낮다.
- 소비자의 특성: 면도기와 생리대는 ‘첫 경험’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한다. 처음 면도를 했을 때 집었던 면도기가 평생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첫 경험’을 잡기 위해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내는 선두업체들 사이를 비집고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움.
실제로 이런 시장의 특성과 매력 떨어지는 사업 모델로 투자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하는데, 과정이 어찌하였던 결국 멋있게 유니레버에게 ‘유니콘 사포’를 쓰고 시집을 갔다. 적당히 좋은 제품을 극도로 저렴한 가격 (대박 가성비)에 구독 형식으로 집으로 배달 해주는 (대박 편의성) 강점만 가지고 면도날 시장점유율 15%를 달성한 것이다. 웹사이트를 봐도 고객 유치 및 유지를 위해 고객 서비스 및 사용자 경험에 부단히 투자한 허슬이 느껴진다. (예: 100% 고객 만족 보장, 무료 업그레이드 및 다운그레이드, 유연한 배달 일정, 대부분 제품 무료 배송)
반면에 길에 나가면 너도나도 하고있는 포케몬고 현상이 있다. 개인적으로 게임 구성 및 완성도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요새 게임의 기본이라는 페이스북 로그인도 없고 (고로 ‘친구 초대하기’ 같은 기본 그로스 기능이 부재), 매우 불안정한 서버 (하루에 30% 이상은 로그인이 안됨), 마인크래프트보다 조금 나은 듯한 그래픽,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뻑’나는 게임 상황들. 한마디로 허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카츄 한마리 잡으려고 불을 키고 돌아다니는 내 자신을 보면 포케몬이라는 엄청난 IP(지적재산)의 힘을 느끼게 된다. 포케몬에 대해 모르는 나도 피카츄를 잡아야 될 것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십수년에 걸쳐 쌓인 브랜드 인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포케몬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였다면 속초에 버스가 매진이 안되었을지도 모르고 게임의 낮은 질에 대한 더 많은 비평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포케몬이라는 IP가 이런 완성도 낮은 게임을 올해 최고의 게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앱스토어 1위, 매출 1위, 사용시간 1위 등.)

허슬과 IP. 그 중 하나만 매우 뛰어나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위 뒤 사례로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한주였다. 하지만 별거 아닌 IP를 대단한걸로 착각하고 허슬도 안하고 (예: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혹은 안되는거 너무나 뻔한데 (예: 너무 작은 시장의 O2O) 피벗을 안하고 죽도록 허슬만 외치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허슬 or IP… the choice is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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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Dollar Shave Club에 투자를 해서 대박이 난 Venrock 이라는 VC는 나와 다르게 직판하는 저렴한 면도날이 차별화된 제품의 핵심이었다고 주장한다. (David Pakman 미디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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