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동의를 얻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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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담당자의 역할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관계들을 조율하고 설득하여 제품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부서 간의 협업으로 팀이 구성 및 진행되고 (cross-functional, XFN 이라고 흔히 지칭), 제품 담당자들이 이런 협업 팀원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해관계자들의 상충된 목표를 조율하는 것이 어지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전략적 중요도 및 복잡도가 높은 제품을 담당할수록 다양한 부서의 높으신 분들의 ‘좋아요’까지 받아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제품 출시일은 멀어져 가고 팀원들은 기가 빠지며 결국엔 모두가 제품 담당자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즉,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완전 총체적 난국. ㅠㅠ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제품 담당자는 조직의 동의를 얻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직 구성원 및 의사결정권자들의 ‘오케이’를 받는 방법은 사람마다, 또 조직 특성 마다 다르겠지만 다음은 내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한 몇 가지 ‘빠르게 동의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기법’들을 정리 및 공유:

기본 (default) 상황을 yes로 설정하고 이해관계자들에게 반박을 하도록 포지셔닝 하기

나는 예전에 이메일 상으로 어떤 안건에 대한 동의를 구할 때 그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렇게 해도 괜찮나요?’ 라고 묻곤 했다. 이런 경우는 이메일 수신자가 ‘오케이’라고 답변을 하지 않는 이상 기본 상황이 ‘안됨’이다. 행여나 안건에 동의를 전적으로 한다고 해도 답변이 오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다.

요즘엔 많은 경우 ‘위 안건을 진행할 예정이니, 피드백 및 기타 의/이견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식으로 이메일 스타일을 바꾸어 쓰고 있다. 이 경우엔 내가 강력하게 안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수신자에게 전달할 수 있고, 동시에 ‘잘 진행되는 일인 것 같은데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면 굳이 꼬투리 잡을 필요 없지’식의 심리를 자극시켜 그들이 동의하는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포지셔닝은 이메일 답변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암묵적 동의’라고 우길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가능성을 고려해 ‘이견이 있으시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 답변 주세요’ 식으로 타임라인을 정해주면 예의마저 챙길 수 있다.

이해관계자 중 의사결정권자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기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제품 출시 결정을 할 때 PR 부서는 그 제품에 대한 홍보 및 예상되는 질문/논란에 대한 대응을 제품팀에게 지원을 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이해관계자 이지만 의사결정권자는 아니다. 즉,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면 PR 부서는 제품 팀에게 그 문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강력한 제품 출시 지연 권고는 할 수 있어도, 그 위험성을 이유로 제품 출시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사결정권이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선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사결정권자들과 그들의 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순수 이해관계자들을 구분하고 그들의 요구를 다르게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메일로 동의를 구하는 경우 To 에 의사결정권자를 열거하고 나머지는 Cc로 처리한 후 의사결정권자들을 직접 호명하여 그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이 꽤 괜찮은 전략이다 (예: Peter, please approve this plan) . 물론, 이것은 의사결정권이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랬다간 제품 담당자로써 처참히 실패하는 지름길). 반드시 사전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취합 및 조율은 하되, 최종 의사결정에 있어서 최단거리의 길을 (=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 사람들 관여) 택하라는 것이다.

짧은 주기의 업데이트를 통해 작은 변화에 대한 동의를 반복적으로 구하기

제품 담당 멘토링을 받으면 가장 자주 듣는 ‘제품 담당자들의 가장 큰 실수’가 있는데, 사무실 구석에서 몇 주 간 고생해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제품 제안서를 써 왔더니 그 모두가 무시하고 코드 한 줄 쓰여지기 전에 폐기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조직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으면 실현 가능성이 0으로 수렴 되기에, 제품 담당자는 제품에 대한 비전과 아이디어 만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럴 때 효과적인 것이 짧은 주기의 업데이트를 이해관계자들과 자주 하는 것이다. 잦은 만남을 가지면 동의를 해야할 부분들을 각개 격파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작은 부분들 하나 씩 의/이견을 취합하여 조율하고 동의에 이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 agile한 공감대 형성) 큰 그림이 완성되는 상황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개구리를 상온의 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는 것과 뜨거운 물을 갑자기 부어 화들짝 놀래키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어느 크기의 변화가 동의를 얻기 더 쉬울까?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구분하기

만약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없다면 빠르게 동의에 이를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의견의 충돌 및 정-반-합의 과정은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건강한 스트레스이기에 무조건 다른 의견의 형성을 막는 전략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안건의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이해관계자들의 의/이견이 없을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의견들을 빨리 취합하여 조율하는 것인데, 이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들이 제시한 의견이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Blocker란 제시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해당 안건을 진행시킬 수 없다는 것이고 strong opinion이란 말 그대로 당사자의 (강한) 의견이라는 것인데, 의견을 이 두 가지로 분류한 후 blocker를 위주로 문제를 해결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

아까 위의 예를 다시 들어, 어느 제품을 출시할 때 높은 가격 책정으로 인해 부정적인 언론이 우려되어 단가를 인하할 수 있을 때 까지 출시 유보를 주장한 PR/마케팅 부서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제품 담당자는 해당 부서에게 blocker인지 strong opinion인지 구분해 달라고 요청하고, 부정적인 언론이 제품 수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사업 성과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 때문에 blocker라고 답변을 받으면 재고를 하면 되고, 반면 부정적인 언론이 지금 상승 중인 회사 선호도 이미지에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을 받으면 (대체적으로, 특히 데이터가 없을 경우) strong opinion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blocker가 아니라고 의견을 폐기하는 것 보다 다음 버전 혹은 추후 집고 넘어가야 할 상황으로 명시하고 나중에 까먹지 않고 처리한다면 협업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까지 만들 수 있다.

나도 최근에 큰 변화와 논란이 수반되는 프로젝트 몇 개를 수행하면서 이 기법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 내가 담당하는 제품과 관련하여 받은 80%의 의견들은 blocker가 아니었다. (상상해보라, 그 80%가 blocker인 줄 알고 다 대응하고 전략을 수정하였으면 걸렸을 추가 시간과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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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 기법들이 그럴 듯 하게 들려도 사실 모두의 동의를 빠르게 이끌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동의를 얻지 못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제품 담당자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제품 담당자는 그 제품의 성공에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핑계는 제품 담당자로써 능력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정연한 논리, 제품에 대한 뜨거운 열정,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데이터, 그리고 위 기법들 + alpha를 총 동원하여 조직의 동의를 얻고 제품을 성공의 방향으로 계속 끌고 나가야 한다. (Aㅏ… 힘들어 ㅠㅠ)

똥에 광 내기: 언제 조직을 떠나야 하나

커리어를 쌓다 보면 가끔씩 자신이 잡고 있는 동아줄이 썩어 있는 상황에 직면 하거나 너무나 안좋은 조직에 엮여 있음을 발견하고 처해진 상황에서 빠져 나갈 궁리를 해야할 때가 생긴다. 나의 커리어 운신의 대부분은 가는 곳의 기회가 너무나 기대되는 긍정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아 이런 썩은 조직에 계속 있다간 X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현 상황 탈출에 모든 것을 걸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들은 직면하는 순간 싸한 느낌이 바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배와 같이 침몰하기 직전까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컨설팅 업계에 있던 시절 ‘똥에 광 내기 (polishing the turd)’ 라는 표현을 습득(?) 했는데, 쓸데 없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퍼 붙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중요한 클라이언트 발표를 앞두고 밤 새 파워포인트의 폰트 크기, 장표 줄 맞춤 등 본질에 아무 상관 없는 것들을 최적화 시키는 것이 ‘똥에 광 내기’의 좋은 예. (그래서 결국 그 전날 까지 “client_strategy_deck_final.pptx” 이였던 파일이 “client_strategy_deck_final_final_v23_edited.pptx” 로 바뀌고…-_-)

똥은 아무리 광을 내어도 똥일 뿐,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나는 조직 내에 이런 ‘똥에 광 내기’ 행위가 만연하다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 비상 탈출 전략을 실행에 옮기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커리어 앞에 있는 지뢰들을 피해갈 수 있게 해준 좋은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빨리 성장하는 유망한 조직은 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집중해서 빨리 해결하기 때문에 건강함과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의 많은 사람들이 ‘똥에 광 내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조직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능력이 없거나, 중요한 곳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없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아니면 더 슬픈 경우, 그 조직은 ‘똥에 광 내는’ 짓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조직에 자신의 커리어를 베팅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지 않은가?

사장이 가볍게 던진 곁다리 질문에 완벽한 답변을 하기 위해 전 조직을 동원하고 쪼아대는 중간 관리자, 부서 간 ‘힘 싸움’ 때문에 협업 제안서를 무한 뺑뺑이 돌리는 임원, 잘 나가는 사람 밑에 딸랑딸랑 줄 서기 위해 실패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 프로젝트를 반론 하나 없이 끌고 가는 팀장… 모두 ‘똥에 광을 내는’ 사람들이다. 놀랍게도 이런 행위는 효율과 결과를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평생 살면서 개인적으로 만족감 넘치며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많지 않다. 만약 자신이 속한 조직에 ‘똥에 광 내기’ 행동이 보이고, 또 그것이 조직 전반적으로 만연하다고 생각 된다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을 권한다.

PS – 물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는 능력을 우선 갖추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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